[두산 V4] 초보 김태형 타짜야구, 명장의 커튼을 열다
OSEN 조인식 기자
발행 2015.10.31 17: 32

 두산 베어스 김태형 감독이 부임 첫 해에 우승을 차지하며 명장으로 가는 첫 걸음을 뗐다. 고비마다 기막힌 승부수와 함께 기용한 선수들의 맹활약으로 기적 같은 승리를 가져왔고, 그 끝에는 우승이 있었다.
두산은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리그 한국시리즈 4차전 삼성 라이온즈와의 경기에서 13-2로 승리했다. 1차전 충격의 역전패 뒤 4연승을 거둔 두산은 2001년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1982, 1995, 2001년에 이은 베어스의 통산 4번째 우승이었다.
김 감독은 감독(프로 원년, 감독대행 제외)으로 데뷔한 첫 시즌에 우승한 네 번째 감독이 됐다. 김 감독보다 앞서 이를 달성한 세 명의 감독(1983 해태 김응룡, 2005 삼성 선동렬, 2011 삼성 류중일)은 최소 두 번 이상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며 명장 칭호를 달았다. 김 감독 두산을 이끌며 명장 대열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선수들을 믿고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이 승리의 원동력이었다. 이는 2-9로 뒤지던 준플레이오프 4차전을 11-9로 뒤집는 비결이 됐고, 플레이오프에 올라 2승 2패로 맞이한 4차전에서도 선수들이 얼어붙지 않고 승리하는 정신적 기반이 됐다. 김 감독은 평소 "선수들이 편하게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내가 할 일이다"라고 버릇처럼 말한다.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지나친 개입은 피하는 스타일이다.
이런 면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났던 시리즈는 NC 다이노스와의 플레이오프였다. 항상 경기 전 김태형 감독이 먼저 긴장감 해소에 나선 두산은 그라운드 안에서도 경쾌했다. 살 떨리는 운명의 5차전을 앞두고 초보답지 않게 경직되지 않고 유연했던 김태형 감독은 승리로 이끌었다.
승부처에서는 냉철한 판단력도 갖췄다. MBC 허구연 해설위원은 지난 4차전에 앞서 "김태형 감독은 정말 초보답지 않게 잘 하고 있다. 특히 거기(플레이오프 5차전 2-2 상황)서 (허경민에게) 번트를 대지 않게 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이야기했다. 2-2로 맞서고 있던 5차전 5회초 무사 2루에서 두산은 허경민에게 번트 대신 강공을 지시했고, 여기서 허경민의 우전안타로 빅 이닝의 씨앗이 만들어지며 6-4로 승리했다.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한 신의 한 수였다.
한 번 승기를 잡으면 상대에게 틈을 주지 않고 독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김태형 야구의 특징이다. 김 감독은 3승 1패로 앞선 한국시리즈 5차전 9-1에서 7회초 무사 1, 3루 위기가 찾아오자 에이스 더스틴 니퍼트를 투입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막아낼 수는 있었지만 약간의 여지도 남기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삼성은 대량 득점에 실패했고, 7회말 정수빈의 쐐기 3점홈런까지 터진 두산의 손쉬운 승리로 시즌이 마무리됐다.
김 감독은 평소 화려한 언변으로 주위에 웃음을 준다. 하지만 단순히 웃기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말 속에 약속이 있고, 하겠다고 한 일은 반드시 해내고 마는 모습이 숨어있다. 처음부터 주변에서 김 감독을 두고 '곰의 탈을 쓴 여우'라고 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두산과 SK에서 배터리코치뢰 오랜 지도자 경험을 쌓은 김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로 선수단을 장악하는 면과 더불어 치밀한 준비로 이겨야 할 경기를 이길 줄 아는 승부사적 면모까지 지니고 있다. 사령탑으로 내딛은 첫 걸음도 크고 대단했다. 친정 팀인 두산을 14년 만에 정상으로 이끈 김태형 감독이 명장으로 향하는 창의 커튼을 힘차게 열었다. /nick@osen.co.kr
[사진] 잠실=민경훈 기자 rumi@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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