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우승 아픔에도 자리지킨 삼성의 아름다운 퇴장
OSEN 고유라 기자
발행 2015.11.01 05: 58

삼성 라이온즈가 뼈아픈 패배에도 끝까지 자리를 상대를 배려했다.
삼성은 지난달 31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2015 타이어뱅크 KBO 리그' 한국시리즈 5차전에서 두산 베어스에 2-13으로 패하며 시리즈 전적 1승4패로 한국시리즈를 마감했다. 역대 최초 통합 5연패에 도전했던 삼성은 예상보다 저조했던 경기력으로 2013년의 기적을 다시 한 번 이뤄내는 데 실패했다.
두산 마무리 이현승이 9회 2아웃에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잡은 뒤부터 잠실구장은 완벽하게 두산의 무대였다. 기뻐하는 두산 선수단과 팬들을 위해 폭죽이 터졌고 음악이 울려퍼졌다. 두산 선수들은 그라운드를 뛰어다니며 14년 만의 우승에 울고 또 웃었다. 우승컵을 건네고 축하하는 시상식 역시 두산 선수들을 위한 자리였다.

그러나 삼성 선수들은 두산 선수들이 기뻐할 시간을 위해 자리를 비워준 뒤 시상식 때 다시 원정 더그아웃 앞에 도열해 두산 선수단을 향해 박수를 보냈다. 그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시상식을 마치겠다"는 아나운서의 멘트가 나온 뒤에야 정리를 위해 들어갔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자리를 뜨기 전 그라운드 위 김태형 두산 감독을 찾아 악수를 나누고 다시 한 번 축하를 건넸다.
삼성으로서는 몇 년을 두고 허탈할 날이었다. 전인미답의 5년 연속 통합 우승 도전은 시리즈를 앞두고 터진 불미스러운 스캔들, 그리고 이로 인해 위축되고 부담이 커진 선수단의 아쉬운 플레이 속에 허무하게 끝났다. 그동안 쌓아온 업적이 모래성처럼 스러지는 모습을 지켜봐야 하는 자리가 바로 준우승팀이다. 90년대 이후 준우승팀 선수들은 경기 후 인사를 하고 나면 바로 자리를 떴다.
이날 삼성 선수단이 끝까지 자리를 지킨 것은 류 감독의 뜻이었다. 삼성 관계자는 "감독님이 2011년 아시안시리즈에서 우승을 한 뒤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진심으로 우승을 축하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우리도 나중에 저런 일이 생기면 끝까지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 생각을 선수단에 전하면서 선수들이 자리를 지켰다"고 전했다.
어느 때보다 허무했던 한국시리즈. 2013년 1승3패의 벼랑 끝에서 내리 3연승을 거두며 통합 3연패를 달성했던 삼성은 그 힘을 잃은 채 우승컵을 5년 만에 다른 팀에게 넘겨줬다. 그러나 스포츠에는 언제나 승자와 패자가 존재하는 법. 언젠가는 패자의 자리에도 설 수 있음을 생각한 류 감독의 의리와 매너는 패장의 뒷모습을 아름답게 했다. /autumnbb@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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