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승 팀의 내야를 이끈 김재호(30, 두산 베어스)는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오래 전부터 인정 받았던 수비는 물론 올해는 타격에서도 크게 진화했다.
정규시즌 133경기에 출전한 김재호의 시즌 타율은 3할7리로 높다. 희생번트 14회, 희생플라이 7회로 팀 배팅에도 능했다. 그리고 삼진(42개)보다 볼넷(54개)이 더 많을 정도로 투수들을 괴롭힌 9번타자였다. 공수겸장 유격수로 거듭난 결과 곧 개막하는 프리미어12 대표팀에도 발탁됐다.
하지만 힘든 면도 있다. 바로 체력적인 부분이다. 한국시리즈가 진행 중일 때도 그는 "타석에서 수는 읽히는데 몸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다. (타격감이) 조금씩 잡히면서 공을 보는 게 편해졌는데, 지금은 반응이 잘 되지 않아 답답하다. 마산에서 특히 스트레스가 심했다. 수비할 때도 계속 스타트를 해야 하는데, 예측 수비를 하다 보니 체력 소모가 크다"는 말로 체력이 떨어져 있던 상태였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대회를 치르려면 체력 관리가 관건이다.

대표팀에 승선한 것은 개인적으로는 경사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미안함도 생긴다. 바로 예비신부 때문이다. 김재호는 2006년부터 교제했던 여자친구와 오는 12월 결혼할 예정인데, 팀이 한국시리즈에 우승한 뒤 곧바로 대표팀에 합류하게 되어 자연스레 결혼 준비를 미래의 배우자에게 맡기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말았다.
바쁠 텐데 결혼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냐고 묻자 김재호는 "80:20 정도로 하고 있다. 웨딩 촬영은 정규시즌 중에 했고, 다른 것도 중간중간에 조금씩 준비했다"고 답했다. 물론 80% 비중은 예비신부가 떠안고 있다. 그는 "항상 미안한 마음이다. 내가 야구를 좀 더 일찍부터 잘 했으면 힘든 일 없이 빨리 결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많이 돌아오게 됐다. 결혼하고 나서 조금씩 갚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는 마음을 전했다. 좀 더 빨리 좋은 시간들을 선물해주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다.
그의 말대로 좀 더 이른 시점에 영광스런 순간들을 만들지 못했던 아쉬움, 그리고 우승을 이뤘다는 기쁨 등 복잡한 감정들이 우승의 순간 교차했다. 김재호는 그라운드에서 펑펑 울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정말 기쁜데, 함께했던 (이)종욱이 형과 (손)시헌이 형이 많이 생각난다"고 이야기했다. 짧은 순간에 수만가지 감정이 뒤섞였을 것이다.
한국시리즈 기간 중 그는 "결혼 앞두고 신경 쓸 일이 많아지니 더 미안하다. 시즌 끝나고 같이 준비하면서 이런 저런 것들도 보러 다니면 즐거울 수 있는 일들인데 시즌이 길어지며 혼자 준비하는 여자친구가 미안해하니 나도 그렇다"고 진심을 밝히기도 했다. 가장 맛보고 싶었던 순간을 위해 최선을 다 한 것이 새로 가족이 될 사람에게는 더 미안해지게 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루며 김재호는 야구를 통해 미안함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김재호는 "평소에 내가 야구에 집중하고 있으니 신경 안 쓰이게 하려고 나한테 물어볼 일이 있을 때도 눈치를 보면서 물어보더라"며 계속해서 미안한 마음들을 표현했다. 아마 이제는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생략됐을 것이다. 국가대표가 되면서 앞으로도 당분간 결혼 준비를 도와주는 일은 쉽지 않게 됐다. 이렇게 된 이상 다른 방법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라운드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게 전부다. 결혼 전까지 예비신부가 바라는 것도 그것 하나가 전부일지 모른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