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팬들에게는 차범근보다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FC 서울이 7일 오후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열린 수원 삼성과의 올 시즌 마지막 슈퍼매치서 차두리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지난 2013년 서울에 입단한 그는 그 해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준우승, 2014년 FA컵 준우승에 힘을 보태며 제2의 전성기를 보냈다. 서울 유니폼을 입고 우승컵과는 인연이 멀었던 차두리는 은퇴를 앞둔 올해 주장으로서 기어코 FA컵 우승을 이끌며 대미를 장식했다. 서울에서 통산 114경기에 출전해 2골 7도움(K리그, ACL, FA컵)을 기록하며 정든 축구화를 벗었다.
차두리는 경기 후 열린 공식 은퇴 기자회견서 "이제야 비로소 진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4~5살 때부터 사랑해왔던 축구를 시작해서 정말로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슬프고 아쉽다"며 "열심히 하려고 했고 노력했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도 후회없이 마지막을 마주할 수 있어 굉장히 홀가분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축구를 하는 동안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그 사람보다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를 들면 들수록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았다. 유럽을 나가 보니 이 사람이 정말 축구를 잘했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서울 팬들에게는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차두리의 은퇴 기자회견 일문일답.
-은퇴 소감.
▲은퇴 기자회견을 많이 하는 것 같다.(웃음) 대표팀에서 (아시안컵) 결승전과 뉴질랜드전도 그렇고, 마지막이라는 기자회견 뒤 운동장에서 공을 차고 있었다. 이제는 진짜로 끝이다. 경기 후나 선수로서 많은 기자들 앞에서 질문 받고 인터뷰하는 경우는 없기 때문에 시원섭섭하기도 하다. 이제야 비로소 진짜 마지막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새로운 삶에 대한 기쁨도 있지만 4~5살 때부터 사랑해왔던 축구를 시작해서 정말로 다시는 그라운드에서 뛸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면 슬프고 아쉽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생각도 한다.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열심히 하려고 했고 노력했다. 지금 이 순간도 후회없이 마지막을 마주할 수 있어 굉장히 홀가분하다. 많은 기자들이 왔는데 예전에는 꺼려하고 싫어했다. 축구 선수 차두리였을 때 어쩔 수 없는 관계라고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서로가 편안한 관계로 만나서 서로 편안하게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생겼으면 좋겠다. 여기 와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좋은 기사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셔서 많은 분들이 저에 대해 좋은 그림을 가질 수 있게 해줘 감사하다. 자주 볼 일은 없겠지만 혹시나 마주치면 반갑게 인사를 했으면 좋겠다.
-축구인생을 3-5로 표현한 이유는.
▲축구를 하는 동안 기준은 차범근이라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을 넘고 싶었고, 그 사람보다 잘하고 싶었다. 그러나 나이를 들면 들수록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걸 알았다. 유럽을 나가 보니 이 사람이 정말 축구를 잘했다는 걸 깨달았다. 차범근이라는 사람의 근처에도 못가는 선수 생활을 해서 졌다라는 표현을 했다. 그럼에도 월드컵 4강과 16강을 이뤘다. 아버지가 차범근이라서 분데스리가에 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펠레나 베켄바워가 아버지라고 해도 기량이 안되면 못가는 곳이 분데스리가다. 빅클럽에서 축구를 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축구를 가장 잘한다는 독일에서 10년을 버틴 건 축구를 하면서 얻은 큰 수확이다. 대표팀 생활, 분데스리가 10년 생활이 개인적으로 축구인생에서 3골을 넣었다고 생각한다.
-차두리와 이천수의 은퇴로 2002 세대가 저물었다. 한 세대가 저물어가는데 느낌은.
▲저랑 천수가 막내였는데 둘이 은퇴한다는 거 보면 팀 자체가 나이가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김)병지 형님이랑 1년 선배인 (현)영민이 형도 현역으로 뛰고 있다. 2002 월드컵 멤버가 한국 축구와 국민들에게 기쁨을 준 건 사실이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지금도 선수와 감독, 혹은 다른 분야에서 잊혀지지 않고 사랑을 받는 것 같다. 이제는 그 세대가 현역으로 뛸 수 없지만 2002년은 정말 대단했다. 그리고 넘치는 사랑을 받았다. 이제는 그라운드가 아닌 밖에서도 그 사랑과 관심을 다른 일로 돌려주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감독을 하든 다른 일을 하든 책임감을 갖고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다.
-독일에서 진로를 계획하고 있나. 인생 2막은.
▲독일에서 자격증을 따는 건 맞다. 그 과정 동안 축구에 대해 세부적으로 배울 것이다. 안팎으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이 많을 것이다. 시간도 걸릴 것이다. 어떤 일이 나에게 제일 잘 맞는지, 한국 축구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생각하겠다. '감독이 되겠다. 행정가가 되겠다' 지금 말하고 싶지 않다. 분명한 건 그라운드와 가까이서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 감독은 쉬운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아버지를 통해 너무 일찍 깨달았고, 배웠다. 섣불리 쉽게 도전했다는 많은 걸 잃고 잘못될 수 있다는 걸 안다. 신중히 고민해서 결정하겠다.
-서울 입단 후 걱정이 많았는데 이런 그림을 예상했나. K리그 3년을 되돌아보면. 은퇴를 언제 결심했나.
▲영화 같다. 진짜 복 받은 사람은 맞다. 이렇게 선수 생활을 마무리 할 수 있는 선수가 얼마나 될까. 앞으로 몇이나 나올까. 소속팀과 대표팀서 너무 많은 사랑을 받으면서 마무리하는 건 정말 꿈 같은 일이다. 이렇게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는 게 맞을 만큼 공을 잘 찼나라는 생각을 한다. 서울에 왔을 때 걱정을 했던 건 사실이다. '서울에 왜 데리고 왔지' 팬들이 반신반의했다. 몸으로 느껴질 만큼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다. 6개월 동안 적응하면서 힘들었다. 3개월을 쉰 뒤 경기를 뛰어서 그런지 경기력이 안좋았다. 우려와 반대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개인적으로 힘들었다. 바닥에 철썩 내려앉은 기분이었다. 그래도 잘할 수 있다 생각했고, 잘하고 싶었다. 항상 유럽에만 있었기 때문에 한국 축구 팬들에게 인정을 받고 싶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아버지의 도움도 컸고, 그 때마다 많은 조언을 해주시면서 차츰 바닥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고 모든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마무리를 할 수 있어 너무 너무 행복하다. 처음부터 햇살이 비치는 좋은 날씨는 아니었다. 어두컴컴한 터널을 지나야 했지만 지나면서 정상의 자리와 밝은 빛이 보였을 때는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다. 축구가 인생을 단단하게 만들어줬고, 인생에 도움이 된 것 같다. 한 번씩 올라갔다 내려오면 숨이 차고 힘들다. 몸이 힘든 것도 있지만 가장 결정적인 건 정신적인 부분이다. 100%로 모든 걸 쏟아붓지 않으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올해도 아시안컵 이후에 마인드 컨트롤과 경기 준비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감독과 팬이 원하는 경기력이 나오지 않을 때도 있었다. 100%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만두고 싶다. 매 경기 100% 준비할 자신이 없고, 에너지가 없다라고 판단하고 느꼈기 때문에 그만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축구선수로 아버지를 절대 넘지 못한다고 생각했을 때는 언제였나.
▲20대 중반이었다. 유망주고 큰 꿈을 안고 어린 선수였기 때문에 겁이 없고 뭘 해도 다 될 것처럼 느껴졌다. 25~6살이 지나고 나서는 차범근이라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이미 3~4년 독일에서 뛰며 강등을 맛 보고 했는데 새삼 아버지에 대한 대단함을 느꼈다. 그 벽을 넘을 수 없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렇다고 차범근처럼 축구를 잘해야 하는 건 아니니깐 내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 4~5살에 축구를 너무 좋아해서 시작한건데 지금도 너무 좋아하는 축구를, 남들이 한 번이라도 뛰어보고 싶은 분데스리가에서 하고 있는데 자책을 하고 좌절을 해야 하나 생각을 해서 즐기려고 했다. 왜 안될까보다는 난 왜 이렇게 많은 걸 가졌을까라는 감사함을 갖고 운동했다. 태어나 보니 아버지가 차범근이었다. 축구를 하다 보니 월드컵 4강에 가 있었다. 조금 지나니 분데스리가에서 뛰고 있었다. 그런 부분을 잊고 있었다. 가진 게 많아서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는 게 내가 살아온 방식인데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가진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내 축구 인생의 철학이었다.
-서울 팬들이 우리에게는 차범근보단 차두리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는데.
▲서울 팬들에게 차범근은 적장이자 미웠을 것이다. 2008년 결승서 만나서 수원이 이겨 우승했는데 서울 팬들이 좋아할 수 없다. 수원 팬들이 나를 향해 야유를 보낸 것에 대해서 불만은 없다. 아버지는 한국 축구를 위해 많은 일을 하셨고, 충분히 박수를 받을만하다. 서울 팬들 사이에서는 내가 더 위대한 선수로 남았으면 좋겠다. 아버지보다는 서울 팬들 사이에서는 더 많은 사랑을 받았으면 하는 욕심이 있다. 서울을 택한 이유는 최용수 감독님이 정말 큰 역할을 했다. 지금 많은 박수를 받고 은퇴를 하지만 최 감독님이 없었으면 절대 불가능했다. 힘들 때도 등을 두드리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던 분이 최 감독님이다. 잘됐을 때는 너가 잘해서 이렇게 됐다고 자신감을 심어준 게 최 감독님이다. 최 감독님께 너무 너무 감사드린다. 이제는 편안하게 용수 형과 소주 한 잔 하고 싶다.
-차두리의 대표팀 후계자는.
▲어려운 질문이다. 대표팀이 오른쪽 풀백을 놓고 고민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좋은 선수들이 많지만 아쉬운 건 내가 처음 왔을 때 '좋다'라고 생각한 선수들이 군대를 가 있다는 것이다. 신광훈은 포항과 경기를 하면서 좋은 선수라고 생각했다. 이용도 월드컵을 뛰며 분명 더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리그에서 좋은 경기력을 보여주고 있다. 정동호도 좌우를 오가며 뛰고 있다. 김창수도 일본에 있지만 꾸준하다. 중요한 건 후배들이 조금 욕심을 갖고 경기장에 나갔으면 좋겠다. 이 자리는 내 자리라는 마음가짐을 갖고 경기장에 나가야 된다. 불안한 경쟁심을 가지면 안된다. 지금은 월드컵 예선이지만 우리가 원하는 건 본선서 더 높이 올라가는 것인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누가 됐든 대표팀에 발탁되면 '이 자리는 놓치기 싫다. 다른 사람에게 주기 싫다'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난 베네수엘라전 때 '이 자리는 내 자리다. 이제는 안 뺏기겠다'라는 마음을 갖고 서른 중반의 나이에도 오기와 독기를 갖고 대표팀에 들어갔다. 하물며 어린 선수들인데 책임감과 독한 마음을 갖고 대표팀 소집에 임했으면 좋겠다. 그러다 보면 분명 그 중 한 명이 경쟁 끝에 그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dolyng@osen.co.kr
[사진] 서울월드컵경기장=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