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리그 타격 3관왕을 차지했던 젊은 타자 이대호는 도하 아시안게임 대표선수로 첫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그의 첫 국제대회에서 한국은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시작으로 이대호는 국제대회 영광의 시간을 오롯이 함께 했다.
이대호에게 국가대표는 배움의 장이었다.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이대호와 대표팀에서 함께 했고, 때로는 좋은 후배들도 그와 함께 대표팀에서 성장했다. 이대호는 “매번 대표팀에 다녀 온 뒤에 배우는 게 있었고, 성장도 했다”고 인정할 정도다.
하지만 이제는 야수 중 선배가 없다. 이번 프리미어12 대표팀에서 이대호는 야수 중 친구 정근우와 함께 최고참 선수다. 투수까지 살펴봐도 대표팀 선배는 정대현 뿐이다. 조용한 성격의 정대현이기에 이대호는 대표팀 분위기까지 살펴야 할 임무를 맡고 있다. 대표팀 주장 정근우가 있지만, 서로 다른 카리스마를 가진 선수라 맡은 역할도 다르다.

평범한 병장으로 비유를 해보자. 군입대를 한 순간 모두들 최고참이 되는 순간을 그린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는 걸 말이다. 하지만 정작 최고참이 된다고 해도 생각보다 자유롭지는 않다. 자리에는 그만한 의무가 뒤따른다. 그리고 때로는 쓸쓸함까지 느끼게 된다. 대표팀에서 지금 이대호가 그렇다.
이대호는 “지금 (정)근우랑 같이 왕따 비슷하게 됐다”며 푸념을 했다. 대표팀 10년 차, 그 사이 기라성같은 선배들은 대표팀을 떠났다. 이제는 이대호가 선배들 같이 대표팀 야수 맏형으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한다. 나 하나만 챙기기도 쉽지 않은데, 후배들까지 챙기기란 쉬운 일만은 아니다.
사실 후배들에게 이대호는 편한 선배는 아니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아니다’ 싶은 장면이 있으면 지적을 하고 넘어간다. 그렇지만 팀워크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이대호는 “후배들이 나를 어려워하는 것 같다. 그라운드에서 후배들에게 조금 엄격하게 대하는데, 그 때문인 것 같다”고 미소 지었다.
이대호가 대표팀 막내이던 시절, 선배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성격이었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바로 물어보고, 배울 게 있으면 세심하게 관찰했다. 하지만 이대호는 과거 자신과 같은 후배가 지금 대표팀에는 없다고 아쉬워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조금씩 물어보긴 하는데 예전 나같은 후배는 없다”고 입맛을 다신 이대호다.
그래도 이대호에게는 정근우라는 친구가 있다. 그래서 웃을 수 있다. 사실 대표팀에서 분위기를 띄우면서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것도 이대호와 정근우의 몫이다. 이대호는 “팀에서 조용하게 있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훈련을 할 때에는 시끄러운 분위기에서 하는 게 좋지 않나”고 말했다. 정근우가 있어 이대호는 쓸쓸하지만은 않다.
일본에서 4년이나 활약했고, 또 일본야구에서 성공을 거둔 이대호였기에 이번 개막전 완패는 더욱 아쉽다. 그래도 이대호는 “야구에는 승자가 있으면 패자가 있다. 이번에는 우리가 졌다. 오타니는 리그에서 만났을 때보다 5km는 공이 더 빠르더라”면서 “한 번은 질 수 있어도, 두 번이나 지는 건 남자로 부끄러운 일이다. 다시 만날 때는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고 다짐했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