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간만에 익숙했던 얼굴과 마주했지만 추억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히려 혹독하게 당했다. 전직 KBO 리그 출신 외국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훌리오 데폴라(도미니카)와 루이스 히메네스(베네수엘라)가 한국의 승리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물론 그들로서는 고개를 들기 어려운 경기들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은 11일과 12일 대만 타오위안 경기장에서 열린 ‘WBSC 프리미어12’ 예선 2·3차전에서 모두 이기고 8강 진출을 향한 발걸음을 재촉했다. 11일에는 도미니카 공화국을 10-1로 대파한 것에 이어 12일에는 베네수엘라를 13-2, 7회 콜드게임으로 꺾고 2연승을 기록했다. 지난 8일 일본과의 개막전에서 0-5로 지며 대회 첫 출발이 불안했던 대표팀으로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었던 2경기였다.
메이저리그(MLB) 선수들이 모두 빠진 두 팀이라 사실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우리보다 아래였다. 그래도 중남미 특유의 파워는 무시하기 어려웠다. 한국도 2경기 모두 초반 흐름은 다소 고전했다. 도미니카와의 경기에서는 상대 선발 페레스를 공략하지 못해 6회까지 0-1로 초조하게 끌려갔다. 베네수엘라전에서도 먼저 3점을 냈으나 곧바로 2점을 추격당하며 쫓겨야 했다.

그러나 대표팀 최고 장점으로 평가받는 타격이 고비 때마다 힘을 냈다. 도미니카전에서는 이대호의 결승 2점 홈런을 기점으로 타격이 폭발하며 10점을 냈다. 베네수엘라와의 경기에서도 김현수 이대호 등 중심타자들의 활약은 물론 황재균이 연타석 홈런을 터뜨리며 경기를 쉽게 풀어 나갔다. 콜드게임을 거두며 마운드 자원도 아꼈다.
여기에 전직 KBO 리그 외국인 선수들의 ‘부진’도 한국의 승리에 밑거름이 됐다. 데폴라와 히메네스가 그 선수들이었다. 데폴라는 2010년과 2011년 한화에서 뛰며 통산 58경기에서 7승15패3세이브1홀드 평균자책점 4.81을 기록했다. 히메네스는 2014년 롯데에서 80경기에 나가 타율 3할1푼5리, 14홈런, 61타점을 터뜨리며 한 때 돌풍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들은 여전히 한국에 대한 그리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다시 만난 한국 선수들에게 자비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데폴라는 아직 점수차가 크게 벌어지지 않았던 8회 도미니카의 네 번째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으나 혹독한 경기를 펼친 채 쓸쓸히 물러났다. ⅔이닝 동안 6타자를 상대했으나 안타 4개를 맞는 등 3실점했다. 최대한 경기를 붙잡아보려던 도미니카의 계획은 데폴라의 순서에서 완전히 꼬이며 처참하게 무너졌다. 한국 타자들은 오래간만에 본 데폴라의 공을 자유자재로 쳐내며 타격감까지 살렸다.
히메네스는 결정적인 순간 폭풍 삼진으로 물러나며 한국 마운드를 웃게 했다. 모두 주자가 있는 상황이라 한국으로서는 더 반가운 삼진이었다. 2회 무사 1루에서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 히메네스는 2-3으로 추격한 3회 2사 2,3루 역전 기회에서도 세 차례 연속 헛스윙 끝에 삼진을 당했다. 2-7로 뒤진 5회 2사 2,3루 추격 기회에서도 역시 4구째 헛스윙 삼진으로 땅을 쳤다.
이대은의 철저한 포크볼 승부를 이겨내지 못했고 인내심 없이 방망이를 휘두른 결과였다. 좀처럼 떨어지는 공에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동료로서 히메네스를 지켜봤던 포수 강민호가 히메네스를 완전히 골탕 먹인 셈이 됐다. 결국 히메네스의 타석에서 추격 기회를 번번이 놓친 베네수엘라는 5회 3점을 더 허용하며 점수차가 7점으로 벌어진 끝에 사실상 경기를 포기했다. /skullboy@osen.co.kr
[사진] 타오위안(대만)=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