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차우찬, 韓 ‘삼성 마당쇠’ 계보 잇는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1.15 05: 34

상대팀 감독조차 놀라게 한 역투였다. 차우찬(28, 삼성)이 혼신의 투구로 멕시코의 추격을 막아내며 8강 확정의 일등공신이 됐다. 최근 국제대회에서 꾸준히 불펜 마당쇠를 배출했던 삼성 역사의 계보를 잇기에 충분한 내용이다.
차우찬은 14일 대만 타이베이 티엔무 구장에서 열린 멕시코와의 ‘WBSC 프리미어12’ B조 예선 네 번째 경기에서 5회 팀의 세 번째 투수로 출격, 3이닝 동안 54개의 공을 던지며 1피안타 1볼넷 8탈삼진 무실점 역투를 펼치며 팀의 4-3 승리를 이끌었다. 중요한 시점 그를 투입시킨 대표팀 코칭스태프의 기대에 120% 부응하는 역투였다. 차우찬이 없었다면 한국은 이날 복병 멕시코에 혼쭐이 날 수도 있었다.
선발 이태양이 3이닝, 두 번째 투수 임창민이 1⅓이닝을 던진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른 차우찬은 5회 포수 강민호의 송구 실책으로 1실점하기는 했으나 6회부터 8회 1사까지 무실점으로 버텼다. 내용은 눈이 부셨다. 탈삼진만 8개였다. 빠른 공과 슬라이더의 조합으로 멕시코 타자들의 혼을 빼놨다. 까다롭고, 때로는 오락가락했던 이날 주심의 스트라이크존도 차우찬의 절정 컨디션 앞에서는 장애물이 되지 못했다. 완벽한 컨트롤에 오히려 손해를 보는 건 타자들이었다.

경기 후 멕시코의 브리토 감독 또한 차우찬의 투구에 놀라움을 표했다. 스카우트 업무에 해박한 브리토 감독은 “한국 팀에서 MLB 진출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누구인가”라는 대만 기자의 질문에 박병호와 차우찬의 이름을 뽑았다. 여기서 박병호는 이미 1285만 달러라는 거액의 포스팅 가격표가 붙어 있는 ‘예비 메이저리거’다. 이날 차우찬의 투수가 멕시코에 얼마나 충격적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날 차우찬의 활용도와 임무는 대회 전 충분히 예견된 것이다. 선발 자원이 이런 저런 사정으로 빠진 대표팀은 선발과 뒷문까지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절실했다. 여기에 가장 주목받은 선수가 차우찬과 조상우(넥센)다. 특히 차우찬은 한국시리즈 당시 좋은 컨디션을 선보였고 그 감을 유지한 채 대표팀에 합류했다. 소속팀에서는 선발로 뛰어 50개 이상의 투구수도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것 또한 장점이었다. 그리고 차우찬은 멕시코전에서 그런 계산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돌이켜보면 삼성 출신 선수들이 대표팀 불펜에서 혁혁한 공을 세운 기억이 적지 않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마무리 투수인 오승환 임창용은 그렇다 쳐도,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당시의 정현욱, 그리고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당시의 안지만도 고비 때마다 묵묵히 등판해 불을 껐다. 정현욱은 눈부신 투혼으로 ‘국민 노예’라는 별명을 얻었고 결승전에서 믿을 수 없는 투구를 선보인 안지만은 “대회 최고의 병역 브로커”라는 찬사를 받았다. 이들이 없었다면 당시의 호성적도 없었다.
그 바턴을 차우찬이 넘겨받으려 한다. 컨디션도 좋고 휴식일 관리도 비교적 잘 된 상황이라 더 기대가 크다. 이제 8강전부터는 내일이 없는 승부다. 설사 선발 투수가 초반에 흔들리면 미련을 두기 어렵다. 차우찬은 그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로 발돋움했다. 시점과 관계 없는 박빙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팀의 우승, 개인적인 영예는 물론 실추된 소속팀의 명예까지 한꺼번에 잡을 수 있을지, 그의 왼 어깨에 큰 관심이 몰려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타이베이(대만)=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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