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머리가 좋은 선수는 확실해요”(웃음).
지난 12일 안산에서 열린 KB손해보험과의 경기에서 세트 스코어 3-0의 완승을 거둔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경기 후 속내를 좀처럼 알기 힘든 너털웃음을 지었다. 팀 내 주전 세터 이민규(23, 191㎝)에 대한 평가를 부탁한다는 질문의 답이었다. 김 감독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는 “아주 좋았다”였다. 며칠 전 혹독한 평가와는 사뭇 달랐다. 김 감독의 어투도 많이 누그러져 있었다.
이민규는 직전 경기였던 8일 한국전력과의 경기 당시 부진했다. 세트 중반 곽명우와 교체되는 일도 있었다. 이민규가 팀에서 차지하는 절대적인 비중을 고려하면 김 감독의 ‘화’를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김 감독도 이를 인정했다. 김 감독은 공격수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 플레이에 말린 이민규에게 경기 후 잔소리를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12일 경기는 달랐다. 김 감독은 “초반에 리시브가 흔들려 어려울 때 공격수가 좋게 때릴 수 있는 공을 많이 올려주더라”라고 만족했다. 잘못된 점을 금세 고칠 수 있는 명석한 머리가 흡족한 듯 보였다.

이날 이민규는 공격수들의 입맛에 맞는 토스를 자유자재로 쏘며 KB손해보험의 블로커들을 완벽하게 피해갔다. 이날 KB손해보험의 팀 전체 블로킹은 2개에 불과했다. 자기 꾀에 스스로 말리는 것이 아닌, 동료들을 빛나게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몸을 날렸다. 이민규의 손끝이 경쾌한 춤을 추자 OK저축은행의 토털배구도 살아났다. 김 감독은 “외국인 선수 시몬이 굳이 공격에 가담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다른 곳이 잘 뚫렸다”라고 이민규를 일등공신으로 손꼽았다.
2세트는 이민규가 만든 OK저축은행의 고른 하모니를 엿볼 수 있었던 시기였다. 2세트에서 굳이 속공에 가담하지 않은 시몬의 공격 점유율은 10.53%에 그쳤다. 득점도 전무했다. 외국인 선수치고는 턱없이 낮은 비중이었다. 그러나 OK저축은행은 사실상 시몬의 공격력 없이도 25-16의 완승을 거뒀다. 왼쪽의 송명근이 5점, 중앙의 박원빈이 4점을 내며 공격을 이끌었고 총 7명의 선수가 고루 득점을 내며 KB손해보험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토스가 어디로 향할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점유율도 이상적이었다. 레프트 자원들인 송명근이 26.32%, 송희채가 15.79%를 책임졌고 중앙의 박원빈(15.79%)과 김규민(5.26%)도 20% 이상을 가져갔다. 여기에 교체로 들어온 강영준(10.53%)과 심경섭(15.79%)까지 적절히 활용하며 송명근에 집중된 KB손해보험 블로커들을 완벽하게 따돌렸다. OK저축은행의 2세트 공격 성공률은 무려 68.42%였다.
외국인 선수들로만 공격진을 구성해도 68.42%의 팀 공격 성공률이 나오기는 힘들다. 그만큼 이민규의 토스가 국내 선수들의 공격력 역량을 극대화시켰다고 봐야 한다. 물론 중요한 시점이 되면 시몬이나 송명근의 비중이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언제든지 다채로운 공격 옵션을 쓸 수 있다는 것은 무기다. 이는 보통 세터들은 흉내낼 수 없는 이민규만의 장점이다. OK저축은행이 이제 이민규의 손바닥 안으로 조금씩 들어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