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연락을 못해봤어요”
한 지방구단 단장은 지난 10월 소속 구단의 한 예비 프리에이전트(FA) 선수에 대한 근황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단장은 선수단의 총책임자다. 단장이 선수의 동선이나 근황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직무유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른 팀 단장들도 예비 FA 선수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예비 FA 선수들이 팀 훈련에 참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눈에서 보이지 않으니 확인할 방법이 마땅찮다.
각 팀의 마무리훈련이 한창인 가운데 예비 FA 선수들은 개인적인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올해는 ‘WBSC 프리미어12’로 인해 FA 일정이 예년보다 많이 늦어졌다. 대개 한국시리즈 직후 일주일 이내에 공시 절차를 밟고 협상이 진행되지만 올해는 곧바로 프리미어12가 시작되는 바람에 그럴 만한 여건이 안 됐다. 대회에 참여하고 있는 예비 FA 선수들의 사정도 고려했다. 대회 중 협상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올해는 18일 FA 선수 자격 공시를 시작으로 22일부터 1주일 동안 먼저 원소속구단과 교섭기간을 갖는다. 만약 원소속구단과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29일부터 12월 5일까지 타 구단과 협상을 가질 수 있다. 12월 초가 되어야 FA 시장 전체가 대체적인 윤곽을 드러낼 것으로 보인다. 본의 아니게 '예비' 기간이 길어진 선수들도 나름의 협상 전략을 짜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몇몇 구단들을 중심으로 “예비 FA 선수들도 계약이 어찌됐건 FA 교섭 전까지는 팀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 옳다”라는 논리가 확대되고 있다. 이 역시 계약 때문이다. 프로야구 선수들은 비활동기간을 제외한 2월부터 11월까지 연봉이 10개월에 걸쳐 나간다. 이런 계약대로라면 정작 팀 훈련에 선수는 없는데, 월급은 고스란히 나가고 있는 셈이다. 계약서에는 분명 선수단 훈련은 물론 구단 행사 참여에 대한 의무가 명시되어 있다.
이에 대해 선수들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항변한다. 한 예비 FA 선수들은 “지금까지도 예비 FA 선수들은 마무리 훈련에서 빠져 개인훈련을 해왔다. 관행적인 문제 아니겠는가”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한다. 실제 KBO(한국야구위원회)의 한 관계자도 “엄밀히 따지면 계약 위반이기는 하다. 하지만 관행적으로 이어진 부분이었다. 계약 주체인 구단이 강제하지 않는 이상 KBO가 먼저 나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없다”라고 곤란한 상황을 에둘러 표현했다.
관행적으로 이어진 만큼 이런 문제를 당장에 손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럴수록 오해는 커지고 있다. 한 구단 관계자는 “설사 원소속팀과 계약을 하지 않더라도 구단 시설에서 훈련을 하는 것이 선수들에게는 더 도움이 될 텐데 아쉽다. 그 기간에 운동을 제대로 하지 않아 FA 첫 해에 부진한 선수가 나온다는 이야기도 설득력이 있다. 해외에 잠시 다녀오는 선수도 있다”라면서 “하지만 강제하자니 FA 협상 때 닥칠 후폭풍이 두려운 것도 사실”이라고 고민을 토로했다. 관행적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컬한 계약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