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SK 퓨처스팀(2군) 감독으로 부임한 김경기 감독은 요새 고민이 많다. 1군에 선수를 공급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건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게 문제다. 타 팀에 비해 육성에 뒤늦게 신경을 쓴 탓에 2군 자원이 비옥하지는 않다. SK의 현실이다.
김 감독은 이 문제를 절실히 느끼고 있다. 올 시즌 김용희 감독을 보좌하는 1군 수석코치를 맡았던 김 감독은 “1군에서 선수가 부족해 2군 자원을 체크하면 필요한 선수가 이런 저런 사정으로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데이터가 없고 감각이 부족하니 올릴 만한 자원이 마땅치 않았다”라고 떠올린다. 이런 기억을 바탕으로 올해는 퓨처스팀 운영 가닥을 완전한 육성으로 잡고 이를 실천에 옮기고 있다.
방법론이 고민이었다. 육성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고, 그 방향이 있다. 고민하던 김 감독은 예전 기억을 떠올렸다. 이른바 용현동 시절로 불리는, SK 초창기 2군의 상황이었다. 그 때도 팀을 창단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계적인 육성이 제대로 되지 않았을 때였다. 그리고 김 감독은 초임급 코치였다. 그 때 김 감독이 공을 들인 선수들이 조동화 박정권 김강민 정상호 최정 등 지금 SK의 1군 주축을 이루고 있는 베테랑들이다.

이 선수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기회에 대비한 철저한 맞춤형 준비였다. 지금 생각하면 재밌는 에피소드도 많다. 김 감독은 “조동화의 경우 처음 교육리그에 가서 18경기 내내 번트만 시켰다. 나중에는 상대도 알고 당연히 전진수비를 하더라. 조동화가 수비수들을 피해 번트를 이리저리 대면서 번트 실력이 향상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툭 맞춰 내야를 넘겨버리더라”라고 떠올렸다. 신고선수로 입단, 가진 재능이 많지 않아 보였던 조동화가 철저한 팀 플레이어로 준비되는 기간이었다.
박정권도 지금처럼 장타 위주의 타자는 아니었다. 김 감독은 “타율 위주의 선수였다. 장타보다는 일단 그것에 중점을 뒀다. 결국 2군에서 수위타자까지 할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장타를 위주로 하면 타율이 떨어진다. 반대로 타율을 만들어놓으면 장타력을 갖추기는 상대적으로 더 수월하다. 중장거리 타자인 박정권도 그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졌다. 투수 출신으로 타격이 그렇게 날카롭지 않았던 김강민은 아예 좌투수만 상대하게끔 했다. 일단 ‘좌투수 스페셜리스트’라는 타이틀이 있으면 상대적으로 1군 눈에 띄기가 쉽기 때문이었다.
김 감독은 “2007년 우승이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은 그 용현동 시절의 멤버들이 1군에 올라가 힘을 보탰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또 한 번의 우승, 그리고 왕조 재건을 위해서는 지금의 2군 선수들이 그 용현동 선수들이 되어야 한다. 그 시절을 떠올린 김 감독도 2군 선수들의 철저한 대비를 강조하고 있다. 당장 완벽한 선수로 만들기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나 자신의 특성을 확실하게 갖춘다면 1군 진입의 길이 넓어진다. 1군이 어떤 포지션이 부족한지도 폭넓게 고려해 그 확률을 더 높일 수도 있다.
김 감독의 마무리캠프 지도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경우는 봄 캠프 합류를 목표로 뛴다. 가고시마에 가 있는 멤버들을 제쳐야 한다는 의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장점을 극대화시키는 방향으로 지도할 생각이다. 1군에 부족한 포지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이에 대한 준비도 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3루를 보는 안정광은 김 감독의 권유를 받아들여 1루 연습도 병행 중이다. “일단 1군이 선수가 필요하다고 할 때, 준비는 되어 있어야 한다”는 게 김 감독의 생각이다.
신인 선수들이 최근 훈련에 합류한 가운데 젊은 선수들의 끼를 찾으려는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다행히 ‘재밌는 선수’들이 몇몇 보인다는 게 김 감독의 웃음 섞인 대답이다. 김 감독은 “1차 지명을 받은 정동윤은 체구가 좋아 구속이 많이 올라갈 것 같다. 안상현은 확실히 재능이 있다. 올해 2군에서 쓸 것이다. 임석진과 김주한은 가고시마에 가 있고 힘이 좋은 김민재, 최수빈도 발전 가능성이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가고시마 캠프와 매일 연락을 주고받으며 신진급 선수들을 정비하고 있는 김 감독은 “전광판 점수는 보지 않겠다. 못 하는 선수가 있어도 써야 한다면 고개를 돌리고 있겠다”고 공언했다. 육성을 하는 김에 2군 감독자 회의에서 ‘7회 몇 점차 이내 도루 금지’와 같은 불문율도 없애자고 건의할 참이다. 경기 막판에라도 뛸 선수는 뛰어 도루 능력을 점검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자연히 투수들은 퀵모션을 연습할 수 있게 되고 수비는 도루나 번트에 대비한 포메이션을 더 연구할 수 있다. 김 감독은 “그래봐야 10분 늦게 끝날 뿐”이라며 SK는 1루에 수비수를 붙여둘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이처럼 철저히 육성 위주의 전략을 짜고 있는 김 감독은 “선수들의 기량 향상이 목표다. 단순히 경기에 이기기 위한 작전은 내지 않겠다”라면서 “삼진을 당하거나 실책을 하는 것은 좋다. 대신 전력질주, 콜 플레이, 수비 백업 등 기본적인 부분을 소홀히 할 경우는 가차 없을 것”이라며 기본을 중시하는 선수들의 마음가짐을 당부했다. 강화의 텃밭을 가꾸기 위한 김 감독의 손길이 분주해지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