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야구대표팀의 과거를 돌아보면 석연찮은 판정에 시달린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미국과의 준결승에서 거듭된 오심에 2-3으로 패했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쿠바와의 결승전에서는 9회말 스트라이크 존이 갑자기 달라지기도 했다. 후자는 해피엔딩이긴 했지만, 당하는 쪽은 벙어리 냉가슴만 앓아야 했다.
이번 프리미어12 대회에서도 한국은 오심에 눈물을 삼켜야 했다. 15일 대만 티엔무 구장에서 열린 조별예선 최종전에서 한국은 미국에 2-3으로 졌다. 물론 한국도 이길 기회는 있었다. 2-2 동점 9회말 1사 만루 찬스를 날려버려 승부치기의 빌미를 줬고, 승부치기가 진행된 10회말에도 득점에 실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조 3위로 8강에 진출, 16일 티엔무 구장에서 오후 7시 30분(이하 한국시간)부터 쿠바와 자웅을 겨루게 됐다. 만약 미국에 이겼으면 네덜란드와 8강전을 치르고, 일본은 결승에 가야만 만날 수 있었다.

한국이 미국에 패배한 첫 번째 이유는 타선이 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도 연장 10회초 나온 판정은 너무 심했다. 한국은 승부치기 무사 1,2루에서 애덤 프레이저의 번트 타구를 투수 우규민이 잡아 3루-2루로 이어지는 병살 플레이를 완성했다. 계속된 2사 1루에서 프레이저는 2루를 훔쳤고, 정확한 송구를 받은 2루수 정근우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프레이저의 왼발을 태그했다.
하지만 이 순간 2루심 왕청헝(대만)은 세이프를 선언했다. 정근우는 몇 번이나 항의를 했고, 다른 야수들도 어이가 없어 잠시 주저앉을 정도의 플레이였다. 계속된 2사 2루에서 브렛 아이브너의 적시타가 나왔고 한국은 그렇게 패배했다.
경기가 끝난 뒤 한국 선수단은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 구장을 떠났다. 버스를 탑승하기 위해 경기장을 빠져나가는 선수들은 납득하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특히 2루수 정근우의 억울함은 더 컸다. 그는 한숨을 쉬며 "(2루심이) 발이 먼저 들어왔다고 하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느린화면을 보면 정근우의 글러브가 미리 기다리고 있었고, 프레이저의 스파이크가 정근우의 글러브를 건드리는 걸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2루심은 프레이저의 발이 베이스에 닿기 전부터 마치 세이프를 선언하려고 하는 것처럼 양 팔을 옆으로 들어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쨌든 경기는 끝났고, 한국은 3위로 조별리그를 마쳤다. 문제는 이제부터다. 앞으로 이런 어이없는 판정이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대표팀 한 코치는 "8강에서 대만이랑 만나면 장난을 칠 거 같아서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했는데, 8강에서 대만은 피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암초를 만났다. /cleanupp@osen.co.kr
[사진] 타이베이(대만)=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