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수함 투수의 폭 넓은 활용이 대표팀 마운드를 높이고 있다.
한국은 15일 ‘2015 WBSC 프리미어12’ 미국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2-3으로 패하며 B조 3위를 기록했다. 예상대로 8강 진출에 성공했으나, 순위는 비교적 낮았다. 하지만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기대 이상의 마운드를 선보였다. 비록 일본과의 개막전에선 5실점했지만 이후 4경기서 모두 3실점 이하를 기록했다. 미국전 역시 심판의 오심 등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마운드는 견고했다.
특히 잠수함 투수들의 적절한 활용이 빛을 보고 있다. 이번 한국 대표팀에는 유독 많은 잠수함 투수들이 눈에 띈다. 최고참 정대현을 비롯해 우규민, 이태양, 심창민 등이 언더핸드 혹은 사이드암 투수들이다. 우규민, 이태양은 원래 선발 자원으로 뽑혔지만, 상황에 따라 언제든지 등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은 조별리그에서 모두 제 몫을 해주며 대표팀 마운드에 큰 힘이 되고 있다.

정대현은 일찌감치 이현승과 함께 더블 스토퍼로 내정됐다. 이미 숱한 국제대회를 경험해 가장 믿을 만한 불펜 자원 중 하나였다. 도미니카공화국과의 경기에서 장원준(7이닝 1실점)에 이어 처음 등판했는데, 세 타자를 상대로 삼진 1개를 곁들이며 완벽히 틀어막았다. 멕시코전에서도 팀이 4-3으로 앞선 상황에서 등판해 1⅓이닝 1볼넷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득점권에 주자가 나간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쿠바와의 평가전에서 손을 다쳤던 우규민은 베네수엘라전에서 이대은(5이닝 2실점)에 이어 등판해 1이닝 무실점, 이어 이태양이 1이닝 무실점을 기록하며 컨디션 점검을 마쳤다. 그리고 이태양은 멕시코전 선발로 나와 3이닝 1피안타 2볼넷 3탈삼진 2실점으로 준수한 성적을 남겼다. 특히 우규민은 미국과의 경기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이날 경기에서 양 팀은 2-2로 연장 10회 승부치기에 돌입했다. 한국은 우규민을 마운드에 올리며 틀어막기에 나섰다. 무사 1,2루로 시작하는 만큼 땅볼 유도 능력이 뛰어나고 수비가 좋은 우규민을 등판시킨 것. 우규민 카드는 제대로 적중했다. 첫 상대 타자 애덤 프레이저의 희생번트 타구는 우규민 앞에 높이 떴고, 우규민은 재치 있게 바운드 후 공을 잡았다. 이어 3루 송구, 2루 송구가 물 흐르듯이 이어지며 아웃카운트 2개를 올렸다.
이후 프레이저의 2루 도루를 강민호가 정확한 송구로 저지하는 듯 했다. 하지만 2루심의 판정은 세이프. 느린 화면 상 완벽한 오심이었다. 원래대로 라면 우규민은 10회 무사 1,2루 위기 상황을 완벽히 극복한 것. 그러나 오심 이후 아이브너에게 적시타를 맞아 실점. 결국 대표팀은 2-3으로 패했다. 하지만 우규민의 경기 운영 능력은 훌륭했다. 대표팀으로선 위기 순간에 쓸 수 있는 믿음직한 카드가 있는 셈이다.

아울러 미국전 4번째 투수로 처음 등판한 심창민도 호투했다. 당초 심창민의 컨디션이 올라오지 않아 고민이었다. 결국 컨디션 회복에 중점을 뒀고, 한국에서 치러진 쿠바와의 평가전에서도 등판하지 않았다. 하지만 심창민은 이날 경기에서 미국 타자들을 완벽히 제압하며 2이닝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으로 활약했다. 심창민까지 건재함을 과시하며 잠수함 투수들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대표팀 마운드가 예상외로 견고해진 것은 선동렬 투수코치의 적절한 운용법도 작용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감독은 지난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도 정대현을 발탁하는 등 투수 기용에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 2006년 WBC 대회에서는 아무도 관심을 표시하지 않았던 KIA 좌완 전병두를 추천하기도 했다. 모처럼 국제대회의 투수코치로 김인식 감독을 보좌하면서 잠수함 투수들을 적절히 활용하는 등 치밀한 투수운용으로 힘을 보태고 있다. 16일 쿠바전을 시작으로 치러지는 토너먼트에서도 잠수함 투수들의 활용은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krsumi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