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산 넘어 산’이다. ‘2015 WBSC 프리미어12’에 출전 중인 대한민국 야구대표팀의 이야기다. 예선을 통과했다는 안도감보다는 찜찜함이 더 먼저다. 8강부터 까다로운 상대를 만나야 하며, 결승에 가기 전부터 사생결단을 벌여야 할 가능성도 높아졌기 때문이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야구 대표팀은 15일 대만 타이베이 티엔무 구장에서 열린 미국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연장 10회 승부치기 끝에 2-3으로 졌다. 9회 1사 만루의 끝내기 기회를 놓친 것에 이어 10회에는 결정적인 아웃·세이프 판정의 오심이 빌미가 돼 결승점을 헌납했다. 미국에 진 한국은 승자승 원칙에 따라 조 3위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토너먼트 사다리도 완전히 바뀌었다.
2위가 유리하고 3위가 불리한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미국을 이겼다면 A조 3위인 네덜란드가 맞붙는 대진이었다. 그리고 4강에서는 참가국 중 객관적인 전력이 가장 강한 B조 1위 일본을 피할 수 있다. 하지만 3위가 됨에 따라 골치 아픈 대진이 연달아 만들어진다. 당장 16일 A조 2위인 ‘아마야구 최강’ 쿠바와 8강전을 벌인다. 이 산을 넘어도 20일 열릴 준결승전에서는 일본-푸에르토리코 승자와 상대한다. 일본과의 리턴매치가 유력하다. 둘 중 하나는 결승에 가지 못한다.

당장 쿠바부터가 만만치 않다. 대회 직전인 지난 4일과 5일 고척스카이돔에서 가진 ‘2015 서울 슈퍼시리즈’에서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1차전에서는 한국이 완승했지만 2차전에서는 쿠바의 역공에 밀렸다. 당시 메사 쿠바 감독은 “첫 경기는 시차적응이 잘 되지 않아 어려웠다”라고 밝혔다. 지금은 문제가 없다. 경기 감각도 마찬가지다. 사실상 이번이 진짜 승부다. 전력은 위에 있지만 단판승부에서 쿠바에 승리를 장담할 수 있는 팀은 많지 않다.
쿠바는 슈퍼시리즈 1차전 당시 3⅓이닝 무실점으로 호투했던 프랑크 몬티에트를 선발로 예고했다. 우리 타자들이 한 번 봤다는 데는 의의를 둘 수 있지만 당시는 타이밍이 잘 맞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초반에 공략하지 못하면 의외로 고전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 또한 쿠바 타선도 한 방이 있는 팀이다. 예선전에서도 활활 타올랐다. 그들도 우리 투수들의 공을 한 차례 본 것은 똑같은 조건이다. 마운드가 상대적으로 약한 네덜란드에 비해서는 여러 모로 까다롭다.
쿠바를 이겨도 대표팀은 4강전에서 오타니 쇼헤이를 만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일본은 푸에르토리코와의 8강전 선발로 마에다 겐타를 예고했다. 그렇다면 오타니는 4강전 선발이 확실시된다. 오타니는 지난 8일 대회 개막전에서 한국에 굴욕을 안긴 주인공이다. 160㎞가 넘는 공을 던지며 6이닝 동안 삼진을 10개나 잡는 등 무실점 호투했다. 한국은 오타니를 상대로 안타 2개를 치는 데 그친 끝에 0-5 영봉패를 당했다. 오타니의 강렬한 등장에 한국은 얼어붙었다.
불운도 겹친다. 15일 티엔무 구장에는 경기 후 난 데 없는 화재 사건이 났다. 전광판 관제실 쪽에 불이 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파로 16일 오후 7시 30분(우리시간)부터 열릴 예정이었던 한국과 쿠바의 8강전 경기 장소가 티엔무 구장에서 타이중 인터콘티넨탈 경기장으로 변경됐다. 우리는 인터콘티넨탈 경기장에서 예선을 치르지 않은 반면 쿠바는 3경기를 치러 상대적으로 익숙하다. 또한 우리는 16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2시간에 걸쳐 타이중으로 이동해야 한다. 오심부터 모든 것이 꼬이고 있다. 스스로의 힘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