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 피칭을 두 번 정도 했는데 아직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네요. 오히려 젊은 선수들보다는 정대현의 공이 가장 좋습니다”
선동렬 야구대표팀 투수코치는 프리미어12를 앞두고 인천SK행복드림구장에서 열린 막바지 훈련 당시 걱정을 드러냈다. 아무래도 정규시즌이 끝나고 한참 뒤 열리는 대회라 투수들이 컨디션 조절에 애를 먹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선 코치의 손을 거친 한국의 마운드는 대회 최강 중 하나로 순항하고 있다. 선 코치의 지도와 용병술이 제대로 먹히고 있다는 호평이 나온다.
‘역대 최약체’라는 소리까지 들었던 야구 대표팀의 마운드가 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한국은 예선과 8강전까지 6경기에서 52이닝 동안 16실점(14자책점)으로 평균자책점 2.42를 기록하고 있다. 이는 8강에서 멕시코에 져 탈락한 캐나다(1.83)에 이어 전체 2위 기록이다. 오히려 ‘역대 최강’이라는 타선이 기대에 다소 못 미치는 상황에서 마운드의 선전은 눈에 들어온다.

8강전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캐나다가 속한 A조보다는 한국의 B조가 더 강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1위라고 해도 무방하다. 정예로 마운드를 꾸려 “우리의 장점은 투수력”이라고 호언장담한 일본(2.83)보다도 더 뛰어난 성적이다. 4위 대만(3.83)의 성적과 비교하면 ‘월등하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불명예를 벗으려는 선수들의 의지와 애국심이 가장 큰 원동력이다. 대표팀 투수들은 ‘투수력이 약하다’라는 지적에 고개를 저으며 그 평가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실제 투수들은 등판할 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며 태극마크의 자부심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선동렬 대표팀 투수코치의 지도와 용병술도 한 몫을 거든다는 분석이다. 선수들의 장점을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투수교체는 신이 들렸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은 코치들에게 많은 권한을 일임하고 있다. 코치들의 보고를 받고 최종 결정은 김 감독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코치들의 비중이 크다는 의미다. 코치들은 “대표팀 선수들은 한국 최고의 기량을 가진 선수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라고 입을 모으지만 국제대회와 같은 단기전에서 이 선수들의 기량과 당일 컨디션을 정확히 짚어야 하는 코치들의 몫은 매우 중요하다. 선 코치의 활약상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연습 단계부터 선수들의 좋은 점, 혹은 리그 때와는 달라진 점을 정확히 짚었던 선 코치는 투수 운영도 완벽하게 해나가고 있다. 투수 교체 시점은 결과론적인 부분이고 매번 성공할 수도 없다. 특히 단기전에서는 잘못된 투수 교체 한 번이 치명상이라 더 신중하다. 하지만 선 코치의 의견이 상당 부분 반영된 이번 대회 교체 시점은 거의 완벽에 가깝다.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신중하게 이뤄지며 상대의 예봉을 꺾고 있다.
실제 투수교체는 진검승부에서 빛이 나고 있다. 멕시코전, 미국전은 1점차 승부였다. 그리고 선발 투수들이 예상보다 일찍 내려갔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완벽한 불펜 운영 속에 실점을 최소화했다. 멕시코전은 불펜 투수들이 6이닝을 자책점 하나 없이 막았고 미국전도 불펜 투수들의 정규이닝 실점은 하나도 없었다. 완벽한 릴레이였다. 선 코치의 투수 교체가 제대로 먹혔다고 볼 수 있다.
선 코치는 투수 조련의 대가로 꼽힌다. 대한민국, 그리고 KBO 리그를 대표하는 당대 최고의 투수 출신인 선 코치는 현재 극강의 면모를 자랑 중인 삼성 마운드의 기틀을 닦은 지도자로도 높은 평가를 받았다. 1년 정도 야인으로 지냈지만 적어도 투수 파트에서는 좋은 감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숙적 일본을 맞을 4강전에서도 그 계산이 빛을 발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