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먼트, 엄밀히 따져 단판승부는 냉정하다. 예선에서 아무리 잘했다고 하더라도 정작 토너먼트에서는 한 경기만 져도 탈락이다.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이번에는 일본에 그 아픔을 돌려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WBSC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을 벌인다. 대회 참가국 중 가장 강한 전력을 자랑하는 두 팀의 대결은 사실상의 결승전으로 불리고 있다. 두 팀의 승자 중 하나가 대회 우승을 차지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한·일전이라 관심도 집중되어 있다. 양 팀도 모두 총력전을 예고하며 이번 경기를 벼르고 있다.
초면은 아니다. 이번 대회에서 한 번 만났다. 나란히 예선 B조에 속한 두 팀은 8일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공식 개막전에서 격돌했다. 일본의 완승으로 끝났다. 선발 오타니 쇼헤이가 6회까지만 탈삼진 10개를 기록하며 무실점 역투했다. 반면 한국은 타격에서 이렇다 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0-5로 영봉패했다. 타격·마운드·수비·주루에서 모두 완패했다. 4강전을 앞두고 다소 찜찜한 기억이 될 수는 있다.

그러나 김인식 대표팀은 은근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다. 오히려 부담은 일본 쪽이 더 크다는 것이다. 우리야 사실 져도 큰 타격은 없다. 일본야구의 우수성이야 잘 알고 있는 만큼 참패가 아니라면 뭐라 할 사람도 많지 않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다. 안방에서 열리는 대회라 반드시 우승을 차지해야 한다는 당위성이 있는 일본이다. 여기에 김 감독은 “저쪽이 먼저 한 판(개막전)을 이겼기에 오히려 부담이 더 클 수 있다”라고 이야기한다.
개막전 승리로 자신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매번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 만큼 묘하게 쫓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우리도 이를 경험적으로 안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였다. 한국은 일본을 두 차례나 이기는 등 전승으로 토너먼트에 올랐지만 딱 한 번의 패배가 대회 탈락으로 직결됐다. 토너먼트 단판승부의 무서움을 제대로 느꼈다. '또 이길 수 있을까'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어깨를 짓눌렀다.
당시 대표팀은 일본전에서 연승을 거두며 신바람을 냈다. 예선 A조에 속했던 대표팀은 대만과 중국을 차례로 꺾은 것에 이어 2006년 3월 5일 도쿄돔에서 열린 일본과의 사실상의 순위 결정전에서는 1-2로 뒤진 8회 이승엽이 극적인 역전 투런을 치며 3-2의 짜릿한 승리를 거뒀다.
2라운드에서도 일본을 이겼다. 일본·미국·멕시코와 한 조에 속한 한국은 멕시코를 2-1로, 미국을 7-3으로 격파한 것에 이어 일본전에서는 이종범이 극적인 결승타를 치며 2-1로 승리했다. 일본은 한국에만 두 번이나 지며 체면을 구겼다. 한국은 2라운드도 3전 전승으로 통과해 4강에 안착한 반면, 일본은 미국·멕시코와 나란히 1승2패를 기록하며 복잡한 득실차 규정까지 따진 끝에 천신만고로 4강에 올랐다.
우리는 4강까지 단 한 번도 패하지 않았고 일본은 4강까지 세 번을 졌다. 그러나 토너먼트는 역시 토너먼트였다. 우리는 다시 만난 일본과의 4강전에서 0-6으로 무너지며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결승전에서 쿠바를 꺾고 대회 정상에 올랐다. 일본은 전체 대회에서 5승3패를 기록했지만 우승, 우리는 6승1패를 기록해 대회 최고 성적을 냈지만 4강이었다. 어디 항변할 곳은 없었다.
공교롭게도 이번은 상황이 반대다. 일본은 한국과의 개막전에서 승리하는 등 예선 5경기를 모두 이겼다. 8강전 승리까지 6전 전승이다. 한국은 이번 대회에서 4승2패를 기록 중이다. 성적만 놓고 보면 일본이 낫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4강에서 한국이 승리한다면 지금까지의 성적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당시의 아픔을 갚아줄 수 있을지 관심이 모인다. /skullboy@osen.co.kr
[사진] 도쿄=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