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오타니에 KO패' 韓, 전쟁에서는 이겼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1.19 22: 53

여러 준비를 하고 나왔지만 원초적인 힘에는 속수무책이었다. 한국이 오타니 쇼헤이(21, 니혼햄)를 공략하는 데 다시 실패했다. 조금은 흔들려주길 바란 것도 솔직한 속내였지만 오타니는 쾌조의 컨디션을 과시하며 대표팀 타선을 완전히 묶었다. 하지만 오타니 전투에서 패했을 뿐이었다. 전쟁에서는 최후의 승자가 됐다.
한국은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에서 오타니와 재회했다. ‘괴물 신인’으로 불리며 일본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로 발돋움한 오타니는 지난 8일 삿포로돔에서 열렸던 대회 개막전이자 B조 예선 첫 경기에서 한국을 상대로 호투하며 강한 인상을 남겼다. 최고 161㎞의 공을 던지며 6이닝 동안 2피안타 10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빠른 공에 적응이 되어 있지 않았던 대표팀 타자들은 속수무책이었다. 빠른 공과 140㎞ 중반에 이르는 포크볼에 힘없이 무너졌다. 결국 한국은 0-5로 영봉패를 당했다. 그래서 이번 경기를 더 별렀다. 말은 하지 않아도 “두 번 질 수는 없다”라는 기운이 풍겼다. 김인식 대표팀 감독도 “부담감은 오타니가 더 클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하지만 이날도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아니 더 못 쳤다. 6회까지 노히터, 9삼진으로 끌려간 끝에 7이닝 1안타 1사사구 11삼진 무득점에 그쳤다.

이날 오타니는 초반 변화구 제구가 그렇게 좋지 못했다. 8일 경기 당시에는 포크볼로 헛스윙은 물론 스트라이크도 제법 잡아냈던 오타니다. 그러나 이날은 포크볼이 손에 일찍 빠지는 모습이었다. 타자들을 유혹하지 못할 정도로 높게 들어오는 경우도 꽤 많았다. 하지만 빠른 공의 위력은 여전했다. 빠른 공으로 한국 타선을 윽박질렀다. 굳이 다른 변화구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빠른 공의 위력이 좋았다.
한국 타자들은 오타니 공략 비법으로 크게 두 가지를 들고 나왔다. 우선 포크볼보다는 빠른 공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 그리고 그 노리는 빠른 공이 들어온다면 볼 카운트와 관계없이 적극적인 스윙을 할 것이었다. 하지만 오타니의 빠른 공은 알고도 치지 못할 정도로 위력이 있었다. 정타가 하나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방망이가 밀리거나 타이밍이 늦어 빗맞았다. 한복판으로 들어오는 공조차도 헛스윙을 유도했다.
최고 구속 160㎞가 나온 가운데 1회는 김현수가 159㎞ 빠른 공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3회에는 황재균(157㎞), 양의지(160㎞)가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3회에는 1사 후 끈질긴 승부를 벌인 이용규가 결국 142㎞짜리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을 당했고 믿었던 김현수는 160㎞ 빠른 공에 또 헛스윙 삼진을 당했다. 오타니의 빠른 공에 자신감이 붙은 모습이었다.
5회는 세 타자를 모두 삼진으로 처리했다. 지금까지 빠른 공 위주였던 오타니는 이번에는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이대호는 슬라이더에 당했고, 박병호는 포크볼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결국 민병헌마저 138㎞ 슬라이더에 루킹 삼진으로 물러났다. 슬라이더를 머릿속에 넣지 않았던 한국 타자들은 슬라이더 궤적을 물끄러미 쳐다 볼 수밖에 없었다.
6회 그나마 황재균이 안타 기회를 잡았지만 3루수 마쓰다의 점핑 캐치로 노히터를 벗을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 양의지는 2루 뜬공, 김재호는 156㎞ 빠른 공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났다. 7회 정근우가 안타를 쳤지만 이용규 김현수도 빠른 공을 공략하지 못했다. 이대호의 타구도 별다른 위력이 없었다. 그렇게 오타니는 7회까지 마친 뒤 노리모토에게 마운드를 넘겼다.
대표팀은 오타니에 이번 대회 2경기에서 13이닝 동안 안타 3개를 친 것에 비해 삼진은 무려 22개나 당하며 철저히 묶였다. 하지만 오타니가 내려가자 상황이 돌변했다. 오타니의 빠른 공을 본 대표팀 타자들에게 나머지 일본 투수들의 공은 상대적으로 공략하기가 수월한 듯 했다. 결국 9회 기적의 역전승을 만들어내며 또 하나의 도쿄 대첩을 썼다. 
9회 노리모토를 상대로 대타 카드들인 오재원 손아섭이 연속 안타를 치며 물꼬를 텄고 정근우의 적시 2루타, 이용규의 몸에 맞는 공, 김현수의 밀어내기 볼넷, 이대호의 역전 2타점 좌전 적시타가 터지며 순식간에 4점을 내 경기를 뒤집었다. 물론 오타니에 묶인 것은 찜찜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었다. /skullboy@osen.co.kr
[사진] 도쿄돔=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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