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뭇한 표정이었다. 후배들에 대한 대견함도 묻어나왔다. 방망이 대신 마이크를 잡은 ‘원조 기적 제조기’ 이승엽(39, 삼성)은 후배들의 성과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분위기를 탄 만큼 결승전에서도 좋은 경기를 할 것이라 예상했다.
김인식 감독이 이끄는 한국 야구대표팀은 19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일본과의 4강전에서 기적의 4-3 역전승을 거뒀다. 0-3으로 뒤져 패색이 짙었던 9회 타선이 아웃카운트 하나 없이 안타 4개와 사사구 2개를 집중시키며 단번에 4점을 뽑아냈다. 일본이 돌아선 분위기를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한국이 만든 기적에 흠집을 내지는 못했다.
이날 도쿄돔에는 이승엽도 있었다. 이승엽은 수많은 명승부를 자신의 힘으로 마무리하며 전 국민적인 영웅으로 추앙받는 선수다. 2006년 1회 WBC 당시 도쿄돔에서 장쾌한 투런포로 기적의 8회를 만들어냈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도 결정적인 홈런포로 또 다시 타도 일본의 선봉장이 됐다. 그런 이승엽은 이날 한국측 주관 방송사인 SBS의 객원해설로 나서 경기를 지켜봤다. 경기가 끝난 뒤, 이승엽은 아직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 했다.

해설을 마친 뒤 이승엽은 대표팀의 ‘팬’으로 돌아가 있었다. 이날 경기 전 “클로스 게임이 될 것이다. 한국의 3-2 승리를 예상한다”라고 말했던 이승엽은 막상 더 극적인 역전극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승엽은 경기를 지켜본 소감에 대해 “정말 재밌는 경기였다. 9회에는 일어서 해설을 할 수밖에 없었다. 주위에서 좀 앉으라고 하더라”라고 활짝 웃었다.
수많은 기적을 만들어낸 선수지만 이승엽은 겸손하게 이번 대표팀의 성과를 조목조목 극찬했다. 이승엽은 “지금까지는 8회에 그런 역전극이 많았다. 하지만 이번은 9회였다. 정말 있기 어려운 일”이라며 투수에서 이유를 들었다. 국제대회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최고의 투수들이 모인다. 그 중에서도 9회는 가장 강한 불펜 투수가 나오기 때문에 징검다리가 되는 8회보다 더 점수를 뽑기 어렵다는 게 이승엽의 설명이다. 한국은 말 그대로 기적을 만들었다.
이승엽은 결승전 전망도 밝게 점쳤다. 이승엽은 “제대로 분위기를 탄 것 같다. 밖에서 보는 우리도 이렇게 흥분했는데 벤치의 선수단은 오죽 했겠는가”라고 밝은 미소를 지었다. 대역전극이 선수들에게 주는 짜릿함이 좋은 기운으로 작용해 결승전까지 이어질 것 같다는 것이다. 실제 단판 승부인 토너먼트에서는 그런 기세가 중요하다. 한국은 20일 열리는 미국과 멕시코의 4강전 승자와 21일 오후 7시부터 대회 결승전을 벌인다. /skullboy@osen.co.kr
[사진] 도쿄돔=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