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미어12 우승] ‘세계 1등’ 김인식, 노병은 사라지지 않는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5.11.21 22: 40

“전력이 약해진 건 사실이야. 그래도 어찌 하겠어.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팀을 잘 만들어봐야지. 타선은 그나마 정상이라는 게 다행이고. 팀워크로 승부를 걸어야 해”
‘2015 WBSC 프리미어12’에 출전할 야구 대표팀이 소집된 지난 10월 26일. 기자회견을 마친 김인식(68) 감독은 다소 답답한 심정을 드러냈다. 국제대회에 대한 팬들의 기대는 한껏 부풀어 있는데 막상 최상의 전력을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상 선수에 도박 스캔들까지 겹쳐 만신창이가 된 마운드 전력에 대해서는 우려를 감추지 못했다. 여러 악재가 겹친 상황에서 만약 대표팀의 성적까지 좋지 못하면 후폭풍은 두 배가 될 수도 있었다. 그 자체가 곧 한국야구의 위기였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한 달 뒤. 우려는 완전히 사라졌다. 김인식 감독은 담담한 표정으로 선수들과 함께 대회 정상을 밟았다. 노감독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역시 명장은 명장이었다. 건재를 과시하며 팀을 대회 정상으로 이끈 김인식 대표팀 감독이 개인적으로는 세계대회 우승에 대한 한을 풀었다. 세 번째 도전에서 거둔 잊을 수 없는 성과이기도 했다.

한국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8-0으로 이기고 대회 금메달과 입을 맞췄다. 예선을 3승2패로 통과한 대표팀은 8강에서 아마추어 최강이라는 쿠바를 잡았고 4강에서는 개최국 일본에 극적인 9회 뒤집기 드라마를 만들며 결승에 안착했다. 그리고 결승에서는 역시 예선에서 패배를 안겼던 미국에 설욕하며 초대 대회 챔피언이라는 값진 명예를 달았다.
모든 선수들의 영광이었지만 김인식 감독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는 대회였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서 처음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금메달을 따냈지만 세계대회에서는 우승과 인연이 없었기 때문이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예선에서 일본을 두 번이나 이기고도 4강전에서 일본에 패하며 결승에 나가지 못했다. 2009년 제2회 WBC에서도 대표팀 사령탑이 됐으나 이번에는 결승에서 일본에 져 아쉽게 우승에 이르지 못했다.
한국 야구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금메달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냈지만 당시는 김경문 감독이 대표팀 감독이었다. 김인식 감독이 대표팀을 다시 지휘했던 제2회 WBC 이후인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때는 조범현 감독,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은 류중일 감독이 각각 이끌어 정상을 밟았고 류중일 감독이 맡았던 2013년 제3회 WBC 대회서는 1라운드 탈락으로 근래 세계대회서 가장 나쁜 성적에 그쳤다.
사실 이번 대회는 사령탑 선임을 놓고 진통이 있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우승팀 감독인 류중일 감독이 맡는 것이 관례였으나 류 감독이 이를 고사했다. 한국시리즈 진출로 대표팀을 제대로 돌볼 시간이 없다는 현실도 있었다. 현역 감독들이 모두 이런 문제를 안고 있어 KBO의 고심도 컸다. 그런 상황에서 김 감독이 나섰다. KBO 기술위원장 신분을 잠시 내려놓고 모두가 피한 독이 든 성배를 집어 들었다.
2009년 WBC 이후 오래간만의 감독 복귀라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특유의 믿음과 뚝심으로 모든 난관을 이겨나갔다. 주축 선수들에 대한 믿음, 그리고 적시에 선수를 배치하는 용병술로 대회 정상에 올랐다. 예선부터 완벽하게 맞아 떨어진 투수 교체, 그리고 일본전 기적의 시발점이 된 9회 두 차례의 대타 작전 성공 등에서 김 감독이 대회 우승에 차지하는 비중을 실감할 수 있다.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skullboy@osen.co.kr
[사진] 도쿄돔=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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