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초대 우승국이 된 프리미어12는 많은 영웅들을 낳았다. 한 순간에 온 국민의 지지를 받게 된 오재원(30, 두산 베어스)도 그들 중 하나다.
대표팀의 백업 2루수이자 대타, 대주자, 대수비 등으로 폭넓게 활용 가능한 자원이었던 오재원은 이번 대회 견고한 수비와 함께 타석에서도 좋은 모습을 보였다. 그의 프리미어12 타격 성적은 타율 5할(6타수 3안타), 2볼넷 1타점이었다. 많은 타석은 아니었지만 영양가가 있었다.
특히 0-3으로 뒤지던 일본과의 준결승전 9회초 선두타자 자리에 대타로 나와 쳐낸 좌전안타가 오재원에게는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였다. 안타를 치고 1루로 가던 오재원은 오른손으로 주먹을 불끈 쥐었는데, 그 동작 하나가 대표팀의 공격 스위치를 켠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상대가 일본이라 한국 선수들의 마음에는 더욱 빠르게 불이 붙었다.

김인식 감독도 한일전을 돌아보며 이 부분이 승부처라고 했다. 결승전을 하루 앞둔 지난 20일 도쿄돔에서 취재진을 만난 김 감독은 "대타로 나온 오재원과 손아섭이 연속안타를 쳤을 때 일본 벤치가 당황하는 것이 보였다"며 대타들의 출루가 역사에 남을 역전승의 출발점이었다는 것을 강조했다.
9회초 다시 타석이 돌아와 외야 우중간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고 시원하게 배트를 집어던진 것도 깊은 인상을 줬다. 중견수 아키야마 쇼고의 호수비에 걸린 것이 아쉬웠지만 뱃 플립만으로도 일본의 기를 죽일 만큼 임팩트가 있었다. 그러면서 오재원에게 큰 관심이 없던 사람들까지도 매료되기 시작했다. 대만에서부터 대표팀의 훈련 보조요원들을 살뜰히 챙겼던 모습도 널리 알려졌는데, 21일 시상식이 끝난 뒤에도 오재원이 그들에게 "서울가서 또 보자"고 말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1개월 전과 비교하면 거의 180도에 가깝게 위치가 변했다. 넥센과의 준플레이오프에서 벤치 클리어링의 발단이 되면서 오재원은 매 타석 야유를 피하기 어려웠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한 뒤에야 하지 못했던 말들을 속 시원하게 털어놓기는 했지만 그 이전까지는 야구장 안에서도 취재진을 가까이하지 않으려 애쓰는 듯 보일 만큼 본인도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게 오래 전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를 보는 시선들이 달라졌다.
남은 2015년 오재원의 야구인생에는 또 한 번의 중대한 갈림길이 기다리고 있다. 이번에 FA 자격을 취득해 대박을 꿈꿀 수 있게 된 것. 오는 22일 귀국한 뒤 23일부터 충남 공주의 한 부대에서 4주간 군사훈련을 받게 되어 빠른 계약은 기대할 수 없지만 이번 FA 시장에서 대어급에 속하는 것은 사실이다.
두산의 김승영 사장은 "재원이는 군사훈련이 예정되어 있어 소속 구단 계약 기간에 사인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면서도 김현수와 마찬가지로 팀에 꼭 필요한 선수라는 표현은 분명히 했다. 두산은 오재원의 마음을 얻기 위해 올해 초에도 2억 3000만원이나 오른 4억원을 연봉으로 안겼다. 그러자 그는 그라운드 위에서는 물론 밖에서도 주장으로 선수들을 이끌며 우승을 만들어냈다. 이번 겨울에는 거취까지 관심을 끌 것이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