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스가 없었다. 그러자 팀 전체가 에이스가 됐다. 그리고 그 뒤에는 대표팀을 비춘 태양이 있었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선동렬 투수코치는 다시 한 번 김인식 감독 휘하에서 세계를 놀라게 했다. 2006 WBC(월드베이스볼클래식)에서도 투수코치와 감독으로 호흡을 맞췄던 두 사람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다시 한 배를 탔다. 그리고 기적을 만들었다. 한국은 21일 일본 도쿄돔에서 열린 2015 WBSC 프리미어12 결승전에서 미국을 8-0으로 제압하고 초대 우승국이 됐다.
이번 대회 기간 내내 투수들의 컨디션을 관리하고 적재적소에 알맞은 투수를 투입한 선 코치의 안목은 많은 칭송을 받았다. 대표팀 전체를 한 명의 에이스로 바꿔놓은 것과도 같았다. 최종엔트리가 확정된 뒤 계속해서 에이스 부재가 문제로 지적됐지만 불펜 활용의 대가인 선 코치는 고민을 장점으로 바꿔놓았다.

결정은 김 감독이 하지만, 그가 선 코치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어 한국 벤치의 투수교체 타이밍에 있어 선 코치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높다. 그리고 그 선택들이 한국을 세계 정상의 자리에 올려놓았다. 6승 2패한 한국은 승리한 경기에서 한 번도 3점 넘게 내준 경우가 없었다. 역전승이 두 번 있었던 것도 마운드가 상대 공격을 막으면서 승부를 뒤집을 수 있는 발판을 만든 덕분이다.
가장 중요했던 준결승 한일전에서 선 코치의 교체 타이밍 포착능력은 빛을 발했다. 당초 김 감독이 계획했던 투구 수(60개)를 훌쩍 넘겨 95개를 던진 이대은이 3⅓이닝을 끝으로 내려간 뒤 대표팀은 이대은이 남겨둔 주자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곤 한 점도 내주지 않았다.
차우찬-심창민-정우람-임창민-정대현-이현승이 5⅔이닝 무실점을 합작했는데, 차우찬이 일본 타선의 상승세를 차단한 뒤 나온 심창민이 두 타자를 연속 볼넷으로 내보내자 선 코치는 2명만 상대한 그를 과감히 내리고 정우람으로 흐름을 끊었다. 그리고 임창민이 일본을 막는 사이 타선이 4득점해 4-3으로 역전하자 정대현-이현승으로 남은 1이닝을 잘게 썰어 틀어막았다. 냉철한 판단, 과감한 결단이 불펜 5⅔이닝 무실점을 만들었다. 이대은 교체 타이밍이 약간 늦었던 점까지 완전히 만회했다.
감독생활을 시작한 삼성에서 정규시즌과 한국시리즈 통합 2연패(2005, 2006)를 달성하는 등 성공을 거둔 뒤 KIA로 옮겨서는 3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며 지도력에 대한 의문부호가 생겼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번 대회를 통해 선 코치의 투수운용은 최고수준이라는 것이 다시 한 번 입증됐다.
일정 수준 이상의 기량을 갖춘 투수들을 활용하는 면에서는 누구도 그를 따라가기 힘들다. 현역 시절 일본에 진출해 '나고야의 태양'으로 불렸던 그는 21일 양 팀의 선수와 코칭스태프가 소개될 때 일본 팬들에게 가장 큰 함성과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웬만한 선수를 능가할 정도로 일본 내 인기는 여전했다. 그런 나고야의 태양이 이번에는 도쿄돔에 떠 대표팀을 비췄다. 한국은 8경기 평균자책점 1.93으로 대회를 마쳤다. /nick@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