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배 코치가 그만하라고 말릴 정도다. 의욕이 대단하다”
지난 1일부터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리고 있는 SK의 특별 마무리캠프는 주로 신인급 선수 혹은 구단에서 전략적으로 육성하는 선수들 위주로 명단이 짜였다. 워낙 혹독한 훈련이 될 것으로 예고됐기 때문에 한 시즌 동안 많은 체력을 소모한 1군 주축급 선수들은 오지 않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이런 기준에 다소 벗어나는 선수도 있다. 야수 쪽에서는 정의윤이 대표적인 선수다. 구단이 끌고 간 것이 아니다. 정의윤이 이번 가고시마 캠프에 가겠다며 구단에 자원 의사를 밝혔다.
야수 최고참이 된 정의윤은 가고시마 캠프의 강훈련을 소화하며 2016년을 기다리고 있다. 쉴 새 없이 반복되는 훈련이지만 표정은 밝다. 의욕도 대단하다. 김용희 감독조차 “정의윤이 워낙 열심히 하고 있다. 정경배 코치가 말릴 정도”라고 혀를 내두를 정도다. 하지만 정의윤은 만족하지 못한다. “2016년에는 무조건 야구를 잘해야 한다”라고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이렇게 정의윤이 훈련에 열을 올리는 데는 숨겨진 사연이 있다.

정의윤은 최근 품절남이 됐다. 약 1년 반 정도 교제한 여자친구와 혼인신고를 마쳤고 신혼집도 차린다. 그런데 식은 올리지 않았다.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정의윤이 야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식을 미룬 것이다. 신부가 “나는 괜찮으니 내년 시즌을 마치고 식을 올리자”라고 오히려 먼저 제안을 했다. 결혼식을 하려면 아무래도 준비할 것이 많다. 훈련에 전념할 수가 없다. 그런 점을 우려해 신부가 먼저 부담을 덜어준 것이다.
지금 상황과 관련이 있다. 정의윤은 지난 7월 SK로 트레이드된 뒤 자신의 잠재력을 마음껏 발휘했다. SK 이적 후에만 무려 14개의 홈런포를 쏘아 올리며 팀의 4번 타자로 자리를 굳혔다. 정의윤 트레이드가 없었다면 SK의 포스트시즌 진출도 없었을 공산이 크다. 그래서 올해 오프시즌은 더 중요하다. 단발성 활약이 되느냐, 롱런으로 이어가느냐는 올해 흘릴 땀에 따라 결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 중요한 시기에 결혼식 때문에 한눈을 팔면 안 된다는 게 신부의 생각이었다.
이런 사정을 이야기한 정의윤은 “정말 미안하다. 만약 신부가 그렇게 배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 여기에 있지 못했을 것이다”라면서 “내가 야구인생에서 가장 힘들었을 때 만난 사람이었다. 힘들 때 항상 옆에서 보듬어주며 많은 도움을 줬다”라고 고마워하면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아직은 우리 정서상 혼인신고만 하고 식을 올리지 못하면 아무래도 신부 쪽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신의 사정을 이해하고 흔쾌히 제안을 해준 천사 같은 신부였다. 정의윤은 이에 반드시 보답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내년에 대한 의지로 똘똘 뭉쳐 있는 정의윤이 가고시마 캠프를 의욕적으로 보내는 가장 큰 이유다. 만약 내년 시즌을 잘하면 기본적인 연봉도 많이 오를뿐더러, 예비 프리에이전트(FA) 효과도 누릴 수 있다. 정의윤은 현 추세라면 2017년 시즌이 끝난 뒤 FA 자격을 얻는다. 꼭 좋은 대우를 받아 그간 자신을 위해 희생했던 신부에게 좋은 선물을 해주겠다는 의지다. ‘천사의 배려’는 정의윤의 삶에 새롭게 가장 중요한 목표를 아로 새겼다.
정의윤은 “나는 6개월 중 딱 한 달을 잘했을 뿐이다. 한창 좋을 때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그래서 지금도 불안한 점이 있다. 팀에 내 자리가 확실히 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잘라 말하면서 “바깥쪽 공에 약했다. 밀어서도 홈런을 칠 수 있는 타자가 되고 싶다”며 이번 캠프에서의 최대 보완 과제를 이야기했다. 만약 그 목표를 이룬다면 정의윤은 2016년 시즌 뒤 많은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정의윤이 살아가는 단 하나의 이유일지 모른다. /skullboy@osen.co.kr
[사진] 가고시마(日)=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