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막바지를 향하고 있는 SK의 가고시마 캠프에는 ‘김하성’이라는 소리가 심심찮게 들린다. 넥센 소속인 김하성이 SK 캠프에 와 훈련을 하고 있을 리는 없다. 다른 이유가 있다. 바로 팀 내 특급 유망주인 유서준(20) 때문이다.
김용희 감독, 김성갑 수석코치는 물론 많은 코칭스태프와 선배들도 유서준에게 김하성의 이름을 꺼내며 자극을 주고 있다. “김하성처럼 되어라”라는 덕담의 의미도 있지만, “네가 김하성보다 못할 것이 없다”라는 쓴소리도 담겨져 있다. 유서준은 “주위에서 김하성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신다. 자극의 의미라고 생각한다.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라고 웃어 넘겼다.
김하성과 유서준은 고교 야구를 대표하는 내야수로 손꼽혔다. 큰 잠재력을 인정받았고 2014년 신인드래프트에서 높은 순위에 나란히 지명됐다. 야탑고를 졸업한 김하성은 넥센의 2차 3라운드(전체 29순위), 성남고를 졸업한 유서준은 SK의 2차 2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을 받았다. 고교 내야수로는 높은 순위들이었다. 오히려 지명은 유서준이 더 빨랐다. 하지만 프로에서 빛을 먼저 발한 것은 김하성이다.

신인 시즌이었던 지난해 60경기에 나선 김하성은 올해 MLB로 떠난 강정호의 대체자로 팀의 주전 유격수를 꿰찼다. 140경기에서 타율 2할9푼, 19홈런, 22도루를 기록하며 기대 이상의 활약을 선보였다. 올해 신인왕 투표에서는 아쉽게 구자욱(삼성)에게 밀렸지만 충분히 인정받을 만한 성적을 남겼다. 그러나 유서준은 올해 1군에서 17경기 출전에 그쳤다. 대부분 교체로 경기에 들어갔다. 두 선수의 2015년 성적은 격차가 크다.
어쩌면 SK가 유서준에게 더 큰 기대를 거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하성만한 재능을 가진 만큼 더 성장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유서준도 이런 팀의 기대에 점차 부응하고 있다. 교육리그, 가고시마 특별 캠프를 거치며 기량이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본기와 가지고 있는 재능은 이번 특별 캠프에 참가한 내야수 중 가장 뛰어나다는 호평이다. 비록 헥터 고메즈의 영입으로 내야는 전쟁터가 됐지만 어디까지나 고육지책에 가깝다. 가장 돋보이는 성장세를 보여주는 유서준의 활약상에 따라 향후 외국인 인선도 달라질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니 기대치를 실감할 수 있다.
유서준은 “교육리그에서 참 많은 것을 배웠다. 캐치볼, 자세, 전력질주 등 초심을 되찾는 계기가 됐다”라면서 “가고시마 특별 캠프에서도 많은 것을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조심스럽지만, 가끔은 두 달이 넘게 이런 훈련을 버티고 이겨낸 내 자신이 기특할 정도”라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힘든 훈련 속에서도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면서 기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가장 매달린 점은 도루와 수비였다. 유서준은 “일단 장점을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도루 부분에서 스타트를 더 보완하는 데 중점을 뒀다”라고 말했다. 유서준은 올해 퓨처스리그 69경기에서 35개의 도루를 성공시킬 정도로 준족을 자랑했다. 후쿠하라 코치의 맹조련을 받으며 수비력도 많이 향상됐다는 평가도 받았다. 유서준운 “내야수로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수비를 잘해야 한다”라며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갔다.
공격에서는 경험이 쌓이면 충분히 좋은 타자가 될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김용희 감독은 "김하성은 턴 동작이 굉장히 좋다. 장타를 뿜어낼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하지만 가진 힘 자체는 유서준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라며 장타력에 대해서도 기대를 걸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유서준은 "재작년까지는 타격에도 자신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기복이 심했다. 나가서 안타도 치고 경험도 쌓다 보면 더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눈빛을 반짝였다.
캠프 내내 들었던 김하성과의 비교가 신경 쓰일 법도 하지만 유서준은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물론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유서준은 “지금 상황에서 김하성이 더 많은 경험을 쌓고, 더 좋은 성적을 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더 이기고 싶다”라면서 “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년까지만 하고 야구를 그만둘 것도 아니다. 오래 살아남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선천적인 재능에 좋은 심장을 갖춘 유서준이 미래의 역전극을 꿈꾸고 있다. /skullboy@osen.co.kr
[사진] 가고시마(日)=지형준 기자 /jpnews@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