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우승의 숨은 공신, 뒤에서 활약하는 통역 김민수씨
OSEN 허종호 기자
발행 2015.11.27 06: 00

우승을 결정 짓는 건 경기의 결과다. 그만큼 팀의 전력을 구성하는 선수들이 중요하다. 팀들이 시즌을 마친 후 자신들이 부족한 것을 끌어 올리기 위해 선수를 영입하는 것도 그 이유에서다. 그러나 경기의 결과가 선수들에게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그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낼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활약하는 지원 스태프의 노력도 포함돼 있다.
통역도 마찬가지다. 통역은 감독과 선수들이 원하는 바를 외국인 선수에게 전달하고, 외국인 선수가 원하는 바를 다시 전달한다. 중요한 역할이다. 외국인 선수가 팀의 전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당연하다. 이번 시즌 K리그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한 전북 현대의 경우 레오나르도와 허베이 화샤싱푸로 이적한 에두가 우승에 큰 기여를 했다.
그런 점에서 전북의 통역 김민수씨는 2연패의 숨은 공신이라고 할 수 있다. 2013년부터 전북에서 일을 하기 시작한 김민수씨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는 레오나르도, 에두, 에닝요, 루이스, 카이오, 파비오 코치, 에스파냐어를 사용하는 우르코 베라가 코칭 스태프 및 구단 직원, 선수들과 원활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통역 일이 뭐가 어렵냐고 할 수 있다. 그건 구단 통역이 단순히 의사전달의 중개인일 때에만 해당한다. 김민수씨도 "통역만 하면 편한 일이다"고 한다. 그러나 김민수씨의 일은 통역이 전부가 아니다. 김민수씨는 선수들이 한국 생활에 적응할 수 있는 도우미 역할도 한다. 지난 여름 우르코 베라가 이적했을 때에는 우르코 베라의 적응을 돕기 위해 매 끼니를 김민수씨의 가족들과 함께 먹기도 했다.
선수들의 훈련을 돕는 것도 김민수씨가 하는 일 중 하나다. 당연히 선수들이 훈련을 하거나 경기를 하면 쉴 수가 없다. 원정 경기와 전지 훈련에도 모두 참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 가족들과 함께할 시간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전북에서 일한 첫 해에는 짧은 휴가 때마다 가족이 있는 진주까지 가야했다. 쉴 시간에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데 써야만 했다. 그나마 지난해 아내와 아들이 완주군으로 이사를 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었다.
그만큼 축구단에서의 통역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김민수씨는 더 힘들었다. 김민수씨는 2003년 안양 LG에 입단하며 프로 축구계에 발을 내딛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는 경남 FC에서 뛰었고, 그 전에는 브라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김민수씨에게 포르투갈어는 통역을 하기 위해서 익힌 것이 아니라, 프로 선수로서 뛰기 위해 익힌 것이었다. 통역 일을 하다보면 선수로 뛰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김민수씨도 동의했다. 그는 "솔직히 통역을 하고 싶지 않았다"며 "선수로 함께하던 동료들, 어렸을 때부터 알고 지내던 선수들 사이에서 통역을 하기 싫었다. 쓸 데 없는 자존심이 있었다. 선수로서 은퇴를 결정했지만 선수로 더 뛰고 싶었다. 연습 경기에서 어깨 인대가 파열됐고, 수술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라 팀에 대한 원망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뛰지 못하는 자신과 뛰는 선수들이 비교될 수밖에 없다.
그랬던 김민수씨가 마음을 바꾼 건 아버지 때문이다. 아버지가 통역 일을 하도록 권유를 하셨던 것. 김민수씨는 "아버지께서 '외국어라는 장점을 썩히지 말아라. 축구 선수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더 성공할 수도 있다. (선수) 친구들보다 돈을 벌지 못해도 기죽을 필요가 없다. 친구들도 나중에는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 이후부터 친구들을 봐도 어떤 감정없이 통역을 더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모두가 선수가 아닌 시점이 온다고 생각한 것이다.
마음을 바꾼 이후에는 모든 것이 잘 풀리고 있다. 브라질 유학 시절 같은 팀에서 일했던 파비오 코치를 전북에서 만나게 됐고, 전북에서의 생활도 빠르게 적응했다. 또한 김민수씨가 통역을 하는 선수들이 자신의 몫을 해내며 전북의 2연속 우승을 이끌었다. 김민수씨는 "내가 뛰는 것이 아니지만, 내가 통역을 하는 선수들이 잘 뛰면 기분이 매우 좋다"며 "선수로서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선수로 우승을 하는 것보다 통역으로서 우승을 하는 것이 더 기쁜 것 같다"고 미소를 지었다. /sportsher@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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