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쎄요, 결정이 쉽지는 않았어요.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습니다”
롯데가 우완 정상급 불펜 요원인 윤길현(32)과의 4년 총액 38억 원(계약금 18억 원, 연봉 5억 원) 계약을 발표한 직후. 윤길현은 담담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 대개 대형 프리에이전트(FA) 계약을 확정지은 직후 선수들은 후련한 심정이나 앞으로의 들뜬 계획을 밝히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윤길현은 달랐다. 생각보다 목소리가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후련하느냐”라는 질문에 잠시 망설이더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라고 털어놨다.
프로는 돈이다. 더 좋은 대우를 찾아 팀을 옮기는 것은 이제 일상적인 일이다. 일생일대의 FA 계약이라면 더 그렇다. SK가 제시한 금액과 롯데가 발표한 공식 금액은 그리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다만 옵션 부분에서 다소간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윤길현도 고민 끝에 이적을 택했다. 이런 질문에 윤길현은 많은 말을 하지는 않았다. 다만 “SK 구단 협상의 공통된 방침이었다. 나만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구단 사정을 이해하기에 섭섭하지는 않다”고 마지막까지 예우를 갖췄다.

대구고를 졸업하고 2002년 SK의 2차 2라운드 지명을 받고 인천 땅을 밟은 윤길현이었다. 그 후 군 복무 기간을 포함해 14년을 SK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그에게 인천은 ‘제2의 고향’이었다. SK 유니폼을 입고 1군에서만 495경기에 뛰었다. 세 차례의 한국시리즈 우승 등 잊지 못할 기억도 많았다. 인천과 SK는 윤길현이 리그 정상급 불펜 요원으로 발돋움한 발판이었다.
새 도전을 선택했지만 그래서 떠나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은 듯 했다. 윤길현은 “롯데가 불러주셔서 영광이다. 가서 형들과 함께 팀 마운드가 잘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각오를 다지면서도 SK 시절 자신을 도와준 구단 관계자들과 어려울 때 항상 힘이 되어준 팬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으며 “SK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꼭 써달라”라고 당부했다.
윤길현은 “나를 이렇게 키워주신 사장님, 단장님, 감독님, 그리고 구단 관계자분들께 모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라면서 “응원해주신 모든 팬분들을 가슴 깊이 간직하겠다. 가서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여 드리겠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목소리에는 아직 정리되지 않은 감정이 남아있는 듯 했다.
보통 FA 계약은 선수들에게 한 가지 선택을 강조한다. 그간 팀에서 뛰었던 정과 팬들에 대한 고마움, 그리고 더 좋은 조건과 더 나은 입지를 위한 선택 중 하나가 그것이다. 두 조건이 모두 맞는다면 가장 좋겠지만 현실상 그런 혜택을 누릴 수 없는 선수들도 나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결론은 항상 이분법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윤길현은 그런 이분법을 거부했다. 은혜를 가슴 속에 간직한 채, 이제 롯데 유니폼을 입고 자신과 계약한 팀의 선택이 틀리지 않음을 증명하려 한다. 두 팀 팬들 모두 박수를 보내고 있는 이유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