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기간 SK의 안방을 지켰던 정상호(33, LG)가 새 둥지를 선택했다. SK로서는 전력 구상이 답답해졌다. 그러나 박경완 SK 배터리코치는 이를 오히려 기회로 보고 있다. 주전 포수로 거론되는 이재원(27)에 대해서도 “수비로 판단해야 한다”라고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다. SK 포수진의 무한 경쟁이 시작된 모습이다.
SK는 프리에이전트(FA) 자격을 얻은 정상호가 LG와 4년 총액 32억 원에 계약하며 포수진 공백이 생겼다. 옵션 측면에서 금액 차이가 났다. 잠재력을 모두 터뜨리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긴 했지만 그래도 정상호는 팀에서 가장 수비적으로 믿을 수 있는 포수였다. 코치로 선임되자마자 베테랑 포수와 작별을 하게 된 박 코치는 이 공백을 메워야 한다는 중책을 떠안게 됐다.
하지만 박 코치는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었다. 박 코치는 “정상호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떠났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면서 떠난 자원에 미련을 둘 필요가 없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지금 있는 자원으로 만회해야 한다. 이재원 김민식 이현석은 정상호가 떠남으로써 더 좋은 기회를 얻었다. 포수진의 시너지 효과가 일어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실제 박 코치는 가고시마 특별캠프 당시부터 있을지 모르는 정상호의 공백에 대비해왔다. 김민식과 이현석을 데려가 혹독하게 훈련을 시켰다. 자세와 블로킹, 송구 동작 등 기본적인 것부터 반복 훈련을 이어가며 성장의 토양을 다졌다. 관계자들이 훈련 강도에 혀를 내두르는 상황에서도 두 선수는 의욕을 가지고 캠프를 완주해 큰 성과를 얻었다. 앞으로 계속 이런 기조를 이어나가야겠지만 전반적으로 기량이 점차 올라오고 있다는 것이 박 코치의 흐뭇한 진단이다.
한 달여의 훈련을 통해 가능성에 대한 뚜렷한 확신을 얻은 박 코치는 ‘주전=이재원’ 공식도 경계했다. 박 코치는 “선수기용은 감독님의 권한이다”라고 강력히 전제하면서도 “이재원이 자연스럽게 주전 포수로 올라설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절대 아닐 것”이라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코칭에서도 원점으로 돌아가 경쟁구도를 만들겠다는 생각이다.
박 코치는 “타격적인 재능이야 분명 이재원이 가장 앞서 있다. 하지만 내 생각에 수비 쪽도 그렇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수비는 세 선수를 놓고 봤을 때 누가 낫다고 할 수 없다”라면서 “포수는 어디까지나 수비가 중점이 되어야 한다. 나는 수비가 되는 포수를 원한다. 이미 선수들에게도 ‘포수로 평가하겠다’고 공지했다”고 밝혔다. 이재원이라고 해도 수비가 되지 않으면 주전 경쟁에서 탈락할 수도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실제 김용희 감독 또한 전 포지션에 있어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가고시마 특별캠프에서 유망주들의 뚜렷한 기량 향상을 확인한 김 감독이다. 이들이 내년 캠프까지 기존 1군 선수들과 경쟁할 만한 역량이 있다고 보고 있다. 포수 포지션도 마찬가지다. 이재원이 유리한 고지에 있음은 분명하지만 내년 시즌 전까지 다른 선수들도 동등한 시각에서 지켜본다는 심산이다. 이재원이 자리를 지킬지, 혹은 다른 선수들이 치고 올라올지. SK의 안방에 변화의 바람을 불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