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수호신 박희수(32)의 2015년 키워드는 ‘조심조심’이었다. 어깨 상태가 좋지 않아 재활에 매달렸던 박희수는 매사에 최대한 신중을 기했다. 그냥 넘을 수 있을 것 같은 돌다리도 2~3번을 두들겼다. 보는 이들의 시선에 따라서는 답답하게 느낄 수도 있는 행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1년 넘게 재활을 했다. 그런 피나는 노력이 한순간의 욕심에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선수도, 코칭스태프도 인내가 필요했다. 다시 마운드에 선 것은 8월 중순이었다. 그것도 “1군에서 등판 간격을 조정하면서 감각을 다듬게 하는 것이 낫다”라는 코칭스태프 판단이 아니었다면 복귀가 더 늦어질 수 있었다. 14경기에 뛰면서 연투는 딱 두 번이었다. 열흘을 쉬는 경우도 있었다. SK 불펜에서는 가장 귀한 투수였다.
그렇게 박희수는 올해 14경기에서 10이닝을 던지며 시즌을 마쳤다. 성적은 좋지 않았지만 아프지 않은 상태에서 시즌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큰 소득이었다. 박희수는 “올해는 아무래도 복귀 시즌이었다. 그러다보니 모든 것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라고 시즌을 돌아봤다. 하지만 복귀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긴 터널을 빠져 나온 박희수도 2015년은 ‘그 정도’ 수준에서 의의를 두는 듯 했다.

하지만 ‘그 정도’ 선수가 아니기에 2016년 기대치가 커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2012년 34홀드, 2013년 24세이브에서 보듯 박희수는 리그를 대표하는 왼손 불펜 요원이다. 부상의 악몽에서 서서히 빠져 나오고 있는 만큼 예전의 모습에 대한 향수가 크다. 팀 상황도 박희수의 부활 필요성을 부채질한다. SK는 정우람(한화) 윤길현(롯데)이라는 핵심 불펜 투수들이 FA 자격을 얻어 팀을 떠났다. 이들은 올해 팀의 마무리 보직을 나눠 들었던 선수들이다. 당장 불펜에서 가장 중요한 마무리 보직이 텅 비었다.
역시 가장 먼저 생각나는 이름은 ‘박희수’다. 그만큼 팬들에게 남긴 인상과 신뢰가 강렬하다. 박희수도 그러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다. 비시즌 중에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으며 몸을 만들고 있다. 박희수는 “이번 오프시즌에는 기술적인 부분보다는 어깨를 비롯한 몸의 보강과 단련을 위주로 훈련하고 있다. 웨이트도 많이 했다”라면서 “지금 페이스는 순조롭다”라고 설명했다. 조심스럽기만 했던 발걸음에 조금씩 속도가 붙고 있다는 이야기다.
팬들의 기대치에 대해서는 살짝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러나 2015년 초에는 느낄 수 없었던 자신감이 조금씩 배어나고 있었다. 박희수는 “올해는 많은 경기에 나서지도 못했고, 성적도 좋지 못했다”라면서 “지금은 아프지 않다. 큰 문제없이 시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아프지만 않고, 현재 프로그램을 잘 이어갈 수 있다면 내년에는 제 기량에 조금 더 가까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지 않을까 생각한다”라면서 2016년 각오를 미리 밝혔다.
그 길목에는 경사도 겹쳤다. 박희수는 6일 동갑내기 여자친구 신소영 씨와 결혼식을 올린다. 박희수는 “2년 정도 연애를 했다. 재활을 할 때 만났고 많은 힘이 됐다”라고 고마워한다. 이제는 재활을 하는 모습이 아닌, 마운드에서 타자들을 당당하게 상대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SK의 수호신이 몸과 마음 모두 든든한 재무장과 함께 내년을 바라보고 있다. 박희수가 두들기기만 했던 돌다리를 가뿐히 뛰어 넘는다면, SK의 내년 전력 공백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