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K저축은행은 지난 시즌 기적을 썼다. 창단 2년 만에 V-리그 정상에 오르며 형님들 앞에서 축하 파티를 벌였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대업이었다. 그런 대업은 OK저축은행의 신분을 바꿨다. 이제는 도전자가 아닌, 챔피언으로 상대의 거센 도전을 이겨내야 한다.
그런 부담감이 아직까지는 선수단을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의 평가다. 김 감독은 “정상을 지켜야 한다는 부담감들이 있는 것 같다”라고 했다. 이런 부담감을 잘 이겨내지 못하면 조급함으로 이어진다. 아직 젊은 선수들이 많은 OK저축은행에 ‘조급함’은 가장 큰 적이다.
선수들도 이를 실감한다. 내부의 문제도 있고, 외부의 저항도 강해졌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실제 잘 나가던 OK저축은행은 얼마 전 4연패의 늪에 빠졌다. 11월 18일 삼성화재전에서 패한 뒤 3라운드 첫 경기였던 11월 29일 삼성화재전까지 네 판을 내리 졌다. 지난 시즌 이후 좀처럼 겪어 보지 못한 긴 침체였다.

선수들은 “우리들이 이기적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나쁜 뜻에서의 이기적이 아니다. 성적에 대한 부담 속에 ‘배구는 팀 스포츠’라는 명제를 잠시 잊었다. 서로 “내가 못해서 진 것”이라는 자책에 빠졌다. 그러다보니 주위가 잘 보이지 않는 부작용이 이어졌다. 김 감독이 부단하게 지적을 했지만 선수들의 생각을 바꾸는 데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 작업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외부의 견제도 강해졌다. 주전 레프트 공격수인 송희채는 “지난 시즌까지는 승부처에서 상대가 좀 더 안정적인 운영을 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우리가 조금 앞서고 있거나 조금 흔들리면 강하게 몰아붙이더라. 우리가 빠른 토스로 속공도 많이 하고 (패턴 플레이로) 후위공격도 많이 하는 스타일인데 서브를 강하게 때려 흔들어놓자는 의도를 느낀다”고 털어놨다. 달라진 상대의 스타일에 적응하는 것도 하나의 숙제다.
여러모로 한 시즌 만에 확 달라진 환경에서 배구를 하고 있는 것이다. 역설적으로 이런 변화와 패배는 선수단을 돌이켜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선수들이나, 김세진 감독이나 모두 마찬가지였다. 김세진 감독은 “상대가 공격적으로 나오면 점수를 잃을까봐 불안해 한다”라고 짚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쓴다. 불안감을 느끼지 않도록 지도하거나, 혹은 불안감을 느끼기 전에 미리 교체해 선수의 심리를 살려주는 것이다. 세터 이민규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싫어서가 아닌, 장기적인 포석이다.
다행히 OK저축은행은 4연패의 후유증에서 빨리 벗어났다. 2일 대한항공과의 경기에서 승리하며 연패를 끊었고 6일 우리카드전에서도 세트스코어 3-1로 이기고 다시 연승의 흐름을 탔다. 김 감독은 “흔들릴 때도, 잘 될 때도 있다. 하지만 그 간격이 너무 벌어지면 안 된다”라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지만 최근 문제점으로 지적했던 블로킹이 나아지고 있는 흐름에 대해서는 반색했다. 김 감독은 “선수들의 생각이 많다는 것이 탈이지만, 아예 생각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라고 위안을 삼았다. 그 생각의 좌충우돌 속에서 챔피언은 아직도 성장하고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