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에는 한 순간의 불운이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남아 있었다. 보조기 등 기타 장비를 착용한 자신의 발목은 차라리 보기가 싫었다. 운동은커녕 일상생활도 불편했다. 그것도 프로 데뷔 후 가장 좋은 기회를 잡았을 때 찾아온 시련이었다. 어렵게 잡은 기회는 부상으로 모두 날아갔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2013년 5월이었다. 공익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이명기(28, SK)는 당시 SK에서 가장 뜨거운 신진 전력으로 평가받고 있었다. 초반 26경기에 타율 3할4푼의 맹타를 휘둘렀다. “타격 재능은 천부적이다”라는 그간의 평가를 증명해나가던 중이었다. 그러나 5월 8일 인천 두산전에서 펜스 플레이 도중 발목에 부상을 당했다. 발목뼈에 멍이 드는, 일상적으로 잘 찾아보기 어려운 부상이었다. 이명기의 시즌은 그것으로 끝이 났다.
당시 이만수 감독을 비롯한 구단 관계자들은 “차라리 골절이었다면 2~3개월 정도 재활한 뒤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운이 너무 나빴다”라고 안타까워했다. 무엇보다 어렵게 만들었던 상승세가 완전히 끊겼다. 26경기에서의 빼어났던 타격감이 한순간의 ‘꿈’으로 사라질 수도 있는 위기였다. 이대로 사라지는 비운의 유망주가 될 수 있을 정도로 치명적인 부상이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답답했던 시기였다. 2군에 있을 때보다 더 큰 낙담이었다.

하지만 곧 기운을 차렸다. “이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라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바로 당시는 여자친구였던 윤미경 씨의 존재 때문이었다. 자신의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윤 씨는 이명기의 손발이 됐다. 병상에 있을 때는 병수발을 도맡아했고, 병원에서 나온 뒤로는 매일 운전기사를 자처하며 이명기의 재활을 도왔다. 그런 윤 씨의 헌신적인 조력 덕에 이명기는 조금씩 벼랑에서 탈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4년 그라운드에 복귀했다.
이명기는 “공익근무요원으로 복무할 당시 만났다. 내가 부상을 당했을 때 옆에서 정말 많은 도움을 줬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꼭 재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떠올렸다. 그리고 이명기는 2014년 83경기에서 타율 3할6푼8리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날아오른 뒤 윤 씨와 결혼을 약속했다. “2015년 시즌을 잘 마무리하고 당당하게 결혼하겠다”라는 다짐과 함께였다.
이명기는 “결혼 약속 때문인지 올 시즌은 동기부여가 남달랐다”라고 뒤늦게 털어놨다. 그리고 예비신부와의 약속도 어느 정도 지켰다. 올 시즌 137경기에 나가 데뷔 후 처음으로 풀타임을 소화한 이명기는 타율 3할1푼5리, 3홈런, 35타점, 22도루를 기록하며 SK의 주전 리드오프 자리를 완전히 꿰찼다. SK 주전 선수 중 가장 적은 연봉(1억 원)을 받았던 이명기는 팀에서 유일한 3할 타자가 되며 따뜻한 겨울도 예약한 상황이다. 이제는 신부와 함께라 더 따뜻하다.
고마움이 큰 만큼, 보답을 해야 한다는 마음도 강하다. 이명기는 결혼 준비가 바쁜 상황에서도 지난 11월 열렸던 SK의 가고시마 특별캠프에 중도 합류했다. 비교적 좋은 시즌을 보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공·수·주 모두에서 세밀한 플레이를 다듬는 것이 목표”라고 이야기했던 이명기는 연신 방망이를 휘두르며 나태함에서 벗어났다. 이를 지켜본 김용희 SK 감독도 “컨디션이 좋아 보이고 열심히 하려고 한다. 타격적으로도 확실한 발전을 이룰 것이다. 내년에는 200안타를 칠 수 있을 것”이라고 흐뭇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 이명기는 식장에 선다. 12일 오후 윤 씨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풀타임을 소화한 뒤 당당하게 결혼하겠다”라는 첫 번째 다짐은 이뤄냈다. 이제 “더 뛰어난 선수가 돼 신부를 평생 행복하게 해주겠다”라는 두 번째 다짐이 이명기의 가슴 속에 아로새겨 있다. ‘병상의 반쪽’은 이제 ‘인생의 반쪽’이 된다. 그리고 그 반쪽은 이명기에게 항상 행운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을 안겨주는 반지였다. 이명기의 2016년이 더 밝아 보이는 이유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