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 빅스톰의 세터 권준형(26)이 기나긴 부진에서 탈출했다. 권준형이 각성하자 한국전력도 손쉽게 승리를 따내며 4연패에서 탈출했다.
한국전력은 14일 수원실내체육관에서 열린 ‘2015-2016 NH농협 V-리그’ 남자부 우리카드와의 경기에서 얀 스토크-전광인-서재덕 삼각편대를 앞세워 세트스코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이로써 한국전력은 4연패에서 탈출하며 8승(9패) 승점 24점을 기록했다. 똑같이 4연패를 기록 중이던 우리카드에 패한다면 위기에 몰릴 수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순간 세터 권준형이 살아나며 연패 탈출의 일등공신이 됐다.
권준형은 4연패 동안 정확한 토스를 올리지 못하며 애를 먹었다. 신영철 감독 역시 권준형의 길어지는 부진에 속이 탔다. 이날 경기를 앞두고 권준형에게 어떤 조언을 했냐고 묻자 신 감독은 “준형이에게 ‘여기서 패해 갈 방법은 없다. 있으면 찾아봐라’라고 질문했다. 그랬더니 준형이가 ‘자신감이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도망갈 수 있는 방법은 ‘배구를 그만두는 것 뿐이다. 도망갈 수 없다면 부딪혀라. 결과는 감독이 책임지겠다’라고 조언했다”고 답했다.

결국 코트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세터의 임무를 다 하라는 의미였다. 이어 신 감독은 “지금 준형이의 상태로는 스피드 배구가 어렵다. 선수들 눈높이에 맞게끔 팀을 꾸려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분명 좋아지기는 했지만 이 정도로는 안 된다”라고 덧붙였다. 신 감독의 질책이 효과가 있었던 걸까. 권준형은 우리카드전에서 안정적인 토스로 공격에 힘을 보탰다. 얀 스토크(22득점)-전광인(11득점)-서재덕(10득점) 삼각편대는 신바람 나는 공격으로 완승을 이끌었다. 공격성공률도 모두 50%를 넘길 정도로 컨디션이 좋았다.
신 감독은 경기 후 권준형의 활약에 대해 “준형이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잘 극복해줘서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스스로 이겨낼 힘이 생길 것이라 본다”라고 칭찬했다. 이어 “오늘 정도만 해준다면 재미있는 경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감독으로서 고맙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세터가 살아나자 팀도 함께 살아난 셈이었다.
권준형도 신 감독의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였다. 그는 경기가 끝난 후 “연패 기간 동안 괴로웠다”면서 “감독님이 ‘도망가는 길은 배구를 그만두는 것 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가슴에 와 닿았다. 도망칠 수 없으니 잘 하든, 못 하든 코트 안에서 해보자는 마음가짐이었다”라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경기에 임한 것이 좋은 결과를 불러왔다.
권준형은 연패 기간 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연패를 하니 자신감이 떨어졌다. 나는 (한)선수 형이나 (유)광우 형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 제 실력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TV로 보면 저 선수들은 저렇게 되는데, 난 왜 안 될까라는 생각도 했다. 혼자 많이 힘들었다”는 게 권준형의 설명. 이어 그는 “공격수가 힘들게 때리도록 올린 공이 많았다. 공격수들이 득점도 못 내고 블로킹에도 걸렸다”라며 연패 기간을 되돌아봤다.
스트레스를 이겨낸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권준형은 “답답해서 연패 기간에 혼자 체육관에 나가서 소리도 지르고 공도 던지고 미친 듯이 뛰어보기도 했다”며 웃었다. 도움이 됐냐고 묻자 “그 당시에는 풀렸다. 답답한데 소리를 지르고 나면 편하더라. 물론 오늘은 그런 것보다 동료들이 잘 해줬기 때문에 잘 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동료들은 정신적으로도 큰 도움이 됐다. 권준형은 “재덕이에게 도와달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코트에서 들떴을 때 재덕이가 가라앉혀주는 등 도움을 많이 줬다”라고 설명했다.
한국전력은 이날 연패 탈출과 함께 승점 3점을 추가했다. 비록 5위에 머물러있지만 4위 삼성화재와는 단 승점 5점 차. 연승과 연패에 따라 순위는 언제든지 바뀔 수 있다. 4연패에서 탈출하며 다시 한 번 상승세를 꾀하고 있는 한국전력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세터 권준형이 있다. /krsumin@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