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 향한 문턱에서 전반기 좌절
심기일전하며 후반기 재도약 준비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은 전반기 내내 팀의 주전 세터 이민규(23, 191㎝)의 이야기만 나오면 표정이 바뀌었다. 언제는 미소를 짓다가도, 언제는 한숨을 내쉬곤 했다. 김세진 감독의 표정은 이민규의 전반기를 모두 함축하고 있었다. 그만큼 들쭉날쭉했다. 세터의 제1명제와는 거리가 있었다.

기복은 시련으로 이어졌다. 경기 중간에 제2세터 곽명우로 교체되는 일이 잦아졌다. 어느 날은 세트 선발 출전을 하지 못하더니, 어느 날은 경기 선발 출전을 하지 못하는 일도 생겼다. 이민규의 토스에 기복이 심하다는 것이 김 감독의 냉정한 진단이었다. 지난 시즌 주전 세터로 팀의 기적같은 우승을 이끈 이민규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전반기였다.
하지만 교체가 질책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래를 내다본 김 감독의 전략과 배려도 있었다. “못할 때 계속 넣으면 오히려 자신감만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최악의 상황이 온다. 이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설명한 김 감독이야말로 이민규가 안정을 찾길 가장 바란 인물이었다. 그렇게 이민규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였던 19일 현대캐피탈전에서도 벤치에서 경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한층 성숙해진 모습으로 경기 중반 다시 등장한 이민규는 19일 다시 좋은 토스를 뽐내며 김 감독의 믿음에 부응했다. 시몬, 송명근, 송희채와의 호흡은 한층 올라와 있었다. 김규민의 부상으로 중앙 공격이 약해진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날개 공격수들과의 안정된 호흡을 통해 현대캐피탈 격파의 보이지 않는 선봉장이 됐다. 이민규의 표정에서도 비로소 안도감이 돌았다. 김 감독도 적어도 이날의 이민규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는 만족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만했다.
지난 시즌 가능성을 실력으로 바꿔놓으며 차세대 세터의 선두주자로 뽑혔던 이민규였다. 신체조건, 두뇌회전 등 모든 면에서 자격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빨리 찾아온 성공 탓이었을까. 이민규는 전반기 마지막 경기가 끝나고 “처음에는 잘 몰랐는데 자만을 많이 했던 것 같다”라고 털어놨다. ‘이 정도면 되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것이 하나 둘씩 쌓였고, 결국 그것이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독약이 됐다는 솔직한 자기 반성이다.
팀이 한때 4연패에 빠지자 미안함이 들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자신의 탓 같아 자책이 심했다. 이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 김 감독이 이민규를 코트에서 빼는 빈도가 늘어난 시점과 정확히 일치했다. 하지만 이를 잘 이겨냈고 결과적으로는 약이 됐다. 현란한 손놀림으로 OK저축은행을 진두지휘했던 이민규는 코트 밖에서 빠른 눈놀림으로 보완점을 찾기 시작했다.
이민규는 “연습을 할 때도 곽명우와 바꿔서 하다 보니 오히려 팀의 장점을 더 많이 알게 된 것 같다”라고 이야기했다. 주전 세터일 때는 보이지 않았던, 아니 흘려 보냈던 팀의 장점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민규는 “상대편으로 보니 우리 팀은 ‘이런 부분이 좋구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우리는 팀 밸런스가 좋다고 생각한다. ‘어디를 줘도 공격을 잘 할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플레이를 할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담담하게 이야기했다.
간신히 반등의 계기를 찾은 이민규는 지금 얻은 교훈을 가슴 속에 소중히 간직하려 한다. 말투야 조용조용하지만 그간 못했던 부분까지 후반기에 만회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이민규는 “팀에 더 보탬이 될 수 있게, 팀이 필요로 하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는 후반기 포부를 남기고 올스타 휴식기에 들어갔다. 이민규의 다짐이 실현된다면 OK저축은행의 독주체제는 더 공고해질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