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시절부터 축구를 시작한 뒤 항상 그는 주목을 받는 입장이 아니었다. 고교졸업 후에는 축구에 대한 회의감도 들었다. 하지만 부모님의 간곡한 설득으로 인해 알려지지 않은 대학에 입학했다. 항상 묵묵히 훈련을 펼치던 그의 인생에 갑작스럽게 반전이 일어났다.
故 차경복 감독이 성남을 이끌던 시절 그는 성남에 입단했다. 대학시절 튀지 않았지만 저돌적인 움직임과 폭넓은 활동량을 선보인 그에 대해 차 감독은 테스트를 했고 구단에 데려왔다.
2군에서 생활하던 그는 2004년 K리그에 데뷔했다. 첫해 18경기에 나서 2개의 어시스트를 배달했다. 거친 역할을 맡았지만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성남에서 꾸준히 경기에 나섰다. 주전으로 자리매김했다. 2010년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정상에 차지할 때도 그는 울분의 결승골을 터트렸다.

우승 후 경례 세리머니를 했다. 상주 상무에 입단했고 다시 성남으로 복귀했다. 어느새 성남에 없어서는 안될 존재가 됐다. 성남 레전드라는 증명인 등번호 7번 김철호의 이야기다.
김철호는 '원클럽맨'이다. 2011~2012년 군입대를 빼면 성남에서 10년간 활약하고 있다. 차감독을 시작으로 김학범, 신태용, 안익수, 박종환 그리고 다시 김학범 감독이 지휘봉을 잡는 동안 다섯 명의 사령탑을 거치면서도 계속해서 주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주전이라고 항상 경기에 뛴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인 욕심은 없었습니다. 항상 그라운드에서 뛰는 것이 좋았고 성남이 좋았습니다. 차경복 감독님과 김학범 감독님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께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한 부분을 인정해 주셨거든요. 경기력이 떨어졌다는 판단, 혹은 기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주목받는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도 괜찮습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경기에 뛰는 것이 행복합니다".
'원클럽맨'이지만 여러 유혹도 받았다. 중국과 태국 등지에서 김철호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직접적인 이야기까지 오고갔다. 하지만 성남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팀에 남았다. 또 불리한 조건도 많았지만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았다. 금전적인 부분에서도 손해가 생겼지만 '원클럽맨'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성남에 남았다.
"감독님들께서 기회를 주셔서 성남에서 뛰었습니다. 구단에 대한 고마움도 굉장히 커요. 이번 시즌을 마치고 지도자 교육도 받았습니다. 대부분 선배들이었는데 배울점이 많았습니다. 선수생활에 대한 욕심도 분명하게 있지만 지도자로 어린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성남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는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변함없습니다. 누가 뭐라고 해도 성남에 남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올해 6월에는 300경기 출전 기념패도 받았다. 프로선수로 300경기 출전이 쉬운일이 아니다.K리그 통산 35번째 기록이다. 그런데 김철호는 성남에서만 300경기를 뛰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당시 성남 구단도 그에게 큰 축하를 건넸다. 오랜시간 함께 했던 고마움이었다. 하지만 김철호는 오히려 구단에 대한 고마움이 크다.

하지만 고민도 크다. FA가 되면서 다시 계약을 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철호는 아직 구단의 연락을 받지 못했다. 올해말로 계약이 끝나는 상황이다. 일단 김철호는 성남에 남고 싶다. 성남 레전드인 신태용 감독의 등번호 7번은 김철호가 달고 있다. 영구결번이 될 번호였지만 신 감독이 허락했다. 김철호가 그만큼 인정을 받는 선수라는 점이다.
"김학범 감독님께서 유럽에서 조만간 돌아오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말은 없으셨지만 성남에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고민하고 있습니다. 다른 곳에 가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감독님께 모든 결정을 미루고 싶습니다. 다른 사람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그렇습니다. 감독님이 저를 키워주셨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보탬이 되고 싶습니다. 그 마음 뿐 다른 생각은 없습니다". / 10bird@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