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일 기준 12일만에 1만 대 계약.’
현대자동차의 제네시스 EQ900에 보인 초기 시장의 반응이다. 현대자동차는 이 같은 시장의 동향에 크게 고무 돼 있다. 2013년 겨울 2세대 제네시스가 출시 될 당시 시장의 반응도 뜨거웠는데, 2세대 제네시스의 1만대 계약 시점은 영업일 기준 17일이 경과해서였다.
현대자동차가 확인한 ‘희망’은 프리미엄 자동차 시장의 가능성이다. 대중차 브랜드로서의 현대자동차는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성공 신화를 썼다. 그러나 프리미엄 브랜드 ‘제네시스’는 이제 첫 걸음이다.

현대자동차는 우리나라 시장에서 ‘프리미엄’에 대한 수요가 충분히 무르익었다고 판단하고 ‘제네시스’로 스핀오프를 결정했는데 그 첫 번째 작품이 ‘EQ900’이다.
현대자동차는 1만이 넘는 계약자들을 면밀히 분석하면서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종전 현대자동차의 플래그십 모델이었던 ‘에쿠스’에 비해 개인 소비자 비중이 증가했다는 점(23%→34%), 50대 초반 이하 소비자가 늘어났다는 점(37%→47%), 수입차에서 옮겨오는 구매자가 많아졌다는 점(13%→20%) 등이 희망의 신호들이다.
젊어진 구매자들은 모델별 구매량 집계에서도 숫자로 확인 됐다. 세 가지 엔진 모델 즉, 3.3 V6 터보 GDi, 3.8 V6 GDi, 타우 5.0 V8 GDi 중 3.8이 60%로 가장 비중이 높았지만 40~55세 계약자만 보면 3.3터보 선택 비율이 3.8보다 더 높았다.
▲구매층이 젊어졌다
미디어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한 시승행사도 3.3 V6 터보 GDi로 이뤄졌다. 람다 3.3 터보 GDi는 현대자동차가 제네시스 ‘EQ900’을 출시하면서 처음 선보인 엔진이다. 3.3터보의 장점을 현대자동차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5.0엔진의 파워와 3.8엔진의 연료 효율성을 동시에 지닌 차”라고 말이다. 3.3엔진에 부착 된 ‘트윈 터보’는 필요한 상황에 필요한 출력을 만들어 내지만 평상시에는 연료 소모를 줄일 수 있어 실용적이다. 실제 운전에서는 체구보다 날렵한 움직임을 가능하게 했다.

람다 3.3 터보 GDi는 최고출력 370마력(ps), 최대토크 52.0kg·m으로 타우 5.0 GDi의 최고출력 425마력(ps), 최대토크 53.0kg·m에 비근하는 성능을 보이고 있다. 3.3터보의 복합연비는 8.5km/l(2WD, 18인치 타이어), 5.0의 복합연비는 7.3km/l(AWD, 19인치 타이어)다.
EQ900의 디자인은 2세대 제네시스를 기반으로 구성 됐기 때문에 한눈에 ‘이거다’ 싶은 특징은 없다. 무게감이 배가 됐고 플래그십에 어울리는 우아함이 느껴지는 정도다.
▲타 봐야 다르다
그러나 실내로 들어가면 성격은 완전히 달라진다. 가공처리를 최소화 한 프라임 나파가죽 시트, 원목 고유의 색감과 나뭇결을 살린 리얼우드, 스테인레스로 된 도어 스피커 메탈 그릴 등이 ‘프리미엄’의 가치를 느끼게 해 준다. 대시보드에 크게 자리잡은 가로선과 센터페시아에서 시작해 뒷좌석까지 이어지는 세로선은 자칫 휑할 수 있는 실내공간을 짜임새 있게 나눠준다.
센터페시아는 디지털과 아날로그가 공존하는 구성으로 품위를 놓치지 않았다. 쾌적한 운전을 돕는 다양한 편의 시설로 ‘꽉 찬 여유’를 누릴 수 있게 했다. 12.3인치의 대형 파노라믹 디스플레이는 ‘여유와 품위’의 콘셉트와 균형이 맞다.

눈에 띄는 기능으로 ‘스마트 자세제어 시스템’이 있다. 운전자의 키와 몸무게, 앉은키 정보를 입력하면 시트 위치, 스티어링 휠 각도 및 거리, 아웃사이드 미러 각도, 헤드업 디스플레이 위치 등이 ‘모범 답안’을 제시해 준다. 물론 시스템이 준 답이 개개인의 자세 취향과 딱 맞아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그 동안 운전자가 고수해 온 자세가 ‘모범 답안’과 어떤 차이가 있는 지는 확인할 수 있다.
▲뒷좌석에 앉는 순간 당신은 VIP
룸미러를 통해 보이는 뒷유리창의 모습이 룸미러 모양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도 눈길을 끌었다. 룸미러는 운전자의 시선과 뒷유리창 사이에 생기는 기울기에 의해 뒷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사물이 어긋나기가 쉬웠다. ‘EQ900’에서는 룸미러로 보이는 세상이 뒷유리창에 비치는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해 거슬림이 없었다.
센터페시아에서 시작해 뒷좌석까지 이어지는 세로라인은 뒷좌석 공간에 운전석과 같은 수준의 ‘통제’ 기능을 부여했다. 뒷좌석에 퍼스트 클래스 VIP 시트를 적용한 차는 뒷좌석에서도 운전을 제외한 대부분을 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었다.
운행면에서 특히 강조한 EQ900의 장점은 뒷좌석 승차감이다. 종전 대형 세단에서 제기됐던 ‘출렁거린다’는 지적을 가라앉히기 위해 서스펜션 구성에 신경을 많이 썼다는 얘기다. 여기에는 작지만 중요한 에피소드가 있다.

지난 해 현대자동차는 고성능 모델 개발 전문가인 알베르트 비어만 부사장을 영입했다. 비어만 부사장이 우리나라의 도로를 돌아보면서 주목한 한 가지가 바로 ‘과속방지턱’이다. 세계 어느 곳에서도 우리나라만큼 많은, 그러면서도 다양한 형식의 과속방지턱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비어만 부사장의 ‘문화충격’은 EQ900을 개발하는 핵심 포인트가 됐다.
▲한국적인, 그래서 세계적인
안정적인 주행성능과 승차감을 줄 수 있는 서스펜션을 구성하라는 과제가 내려졌다. 이를 위해 EQ900에는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이 들어갔다. 일반적으로 핸들링이 민첩하면 승차감이 부족할 수 밖에 없는데 두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시스템으로 개발했다. 우리나라 도로의 다양한 규격의 과속방지턱이 이 시스템을 개발하는 일등공신이 되는 패러독스가 일어났다.

EQ900 체험은 서울 강남구의 과속방지턱이 다양하게 설치 된 이면도로에서도 이뤄졌다. 뒷자리에 앉아 시속 60km 전후의 속도로 과속방지턱을 넘어가는 경험을 했다. 한결 단단하게 세팅 된 서스펜션은 탑승자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준의 진동을 전해왔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최상위 클래스에 적용 되는 ‘매직 바디 컨트롤’(요철을 감지해 자동적으로 서스펜션을 조절해 주는 장치. 탑승자는 요철 자체를 느끼지 못함)까지는 못 미치지만 최초 충격과 충격 이후의 여진을 적정 수준에서 흡수해 탑승자가 인내 가능한 범위로 한정하고 있었다.
고속도로 운행에서의 안정감과 소음 및 진동 성능은 일품이었다. W호텔을 출발해 남춘천을 돌아오는 왕복 130km 구간에서 EQ900이 보여준 움직임은 국내에서 출시 된 그 어떤 차보다 우월했다. 고속 주행에서도 동승자의 목소리를 방해하지 않는 차폐 장치는 프리미엄의 가치를 느끼게 했다. 제네시스는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소음을 흡수하는 ‘중공(中空) 흡음 알로이 휠’을 국내 최초로 장착했고, 도어에는 3중 실링 웨더스트립을, 차창에는 이중 접합 차음 글래스를 적용했다.
▲고요한 바다들 항해하듯
고속도로에서 특히 돋보이는 기능 중에는 HDA로 불리는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이 있었다. 기존의 주행 보조장치에다 GPS가 콜래보레이션 된 개념이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이다. 차가 갖고 있는 각종 주행 보조장치에다 도로의 정밀한 지형과 상황이 실시간으로 결합 되면 그것이 바로 ‘자율주행’이 된다. EQ900은 자율주행의 가장 기본적인 구조를 갖췄고 아직은 초보적인 단계이기는 하지만 ‘자율주행’의 첫 걸음을 뗀 의미를 안고 있었다.
HDA는 차가 고속도로 톨게이트를 통과하는 순간을 GPS(내비게이션)가 파악해 차량의 운행에 관여하는 시스템이다. 물론 톨게이트 통과 이후 대기 상태가 되고 실제 작동 지시는 운전자가 내린다.

HDA 시스템이 작동 되면 차는 차간 거리를 알아서 제어하고, 차선을 인식해 횡방향 움직임을 제어하며, 한국적인 상황이긴 하지만 과속단속 카메라 구간에서는 알아서 속도를 줄여주기도 한다. 도로교통법상 운전자가 운전대에서 손을 뗄 수는 없지만 이 장치를 가동한 상태라면 오디오시스템을 조작하는 것과 같은 간단한 동작은 운행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가 됐다.
▲브랜드 차별화, 쏘나타는? 아반떼는?
EQ900은 이 같은 빼어난 성능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게 결정 된 브랜드 스핀오프로 인한 과제는 여전히 안고 있었다. ‘제네시스’라는 브랜드를 현대자동차와 어떻게 차별화 하는가의 숙제다.
최근 출시 된 현대차에 공통적으로 적용 된 디자인 철학이 그 첫 번째 차별화 무대다. 현대자동차는 2013년 겨울 출시 된 2세대 제네시스를 시작으로 ‘플루이딕 스컬프쳐 2.0’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적용해 왔다. YF 쏘나타로 상징 되는 ‘플루이딕 스컬프쳐’에 비해 한결 정제 된 디자인 철학이 ‘플루이딕 스컬프쳐 2.0’이다.
2세대 제네시스부터 적용 된 ‘플루이딕 스컬프쳐 2.0’은 이후 출시 된 ‘쏘나타’ ‘아반떼’를 거쳐 ‘EQ900’까지 맥을 잇고 있다. 하지만 ‘제네시스’의 독자 브랜드 출범 이후 ‘쏘나타’와 ‘아반떼’는 이제 같은 브랜드가 아니다. 둘 중 하나는 새로운 디자인 콘셉트를 찾아나서야 할 판이다.
‘플루이딕 스컬프쳐 2.0’에서 ‘헥사고날’이던 라디에이터 그릴의 이름이 EQ900에서 ‘크레스트 그릴’로 바뀐 것을 보면 브랜드 차별화 움직임은 이미 시작 됐다. EQ900에서 시작 된 브랜드 차별화의 고민은 현대자동차와 제네시스에 어려운 숙제를 안겼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