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처에서 멋있는 덩크슛으로 경기를 끝내는 것. 모든 선수들이 바라는 명장면이다. 하지만 감독은 입장이 다르다.
고양 오리온은 25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2016 KCC 프로농구 4라운드에서 서울 SK에게 80-89로 패했다. 3연승에 실패한 오리온(22승 12패)은 2위를 유지했다.
승부처는 4쿼터 막판이었다. 오리온은 헤인즈가 1쿼터 후반 오른쪽 발목을 다쳐 돌아오지 못했다. 대신 투입된 조 잭슨(16점, 11어시스트)이 맹활약을 펼쳐 공백을 메웠다. 잭슨은 76-76으로 맞선 4쿼터 종료 2분 35초를 남기고 과감하게 덩크슛을 시도했다. 잭슨은 180cm의 단신이지만 김종규를 앞에 두고 덩크슛을 성공시킬 만큼 탄력이 좋다. 하지만 잭슨의 덩크슛은 림을 맞고 튀어 나왔다. 추일승 감독이 크게 화를 낼 정도로 치명적인 실패였다.

공을 잡은 SK는 오용준이 코너에서 결정적인 3점슛을 터트렸다. 이어진 공격에서 잭슨의 2점슛은 다시 불발됐다. SK는 김민수의 3점슛이 림을 돌아서 나왔으나 박승리가 공격리바운드를 건져 골밑슛을 넣었다. 순식간에 점수 차가 5점으로 벌어졌다.
경기 후 추일승 감독은 “잭슨의 덩크슛 실패가 치명적이었다”며 아쉬워했다. 문경은 감독 역시 “잭슨의 덩크슛 불발이 행운이었다. 덩크실패가 기회가 됐다. 오용준의 3점슛이 들어갈 때 승리를 확신했다. 내가 넣은 것만큼 속이 시원했다”며 똑같은 승부처를 승인으로 봤다.
국내선수들이 승부처에서 덩크슛을 실패해 승리를 날렸던 사례도 있었다. 지난 2014년 3월 29일 SK와 모비스의 4강 플레이오프 4차전 종료 1분 33초전. 68-76으로 8점 뒤진 SK가 속공기회를 맞았다. 김선형이 덩크슛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결국 모비스가 82-69로 이겨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했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추격을 위한 큰 전환점이 필요했던 김선형의 덩크슛 시도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 하지만 실패의 위험부담 또한 컸다. 김선형은 “똑같은 상황이 와도 다시 덩크슛을 시도할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감독의 입장은 다르다. 유재학 감독은 “(덩크슛이) 성공하면 팀의 사기가 올라갈 수 있겠지만, 실패하면 팀이 망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실패하면 끝나는 상황이었다”고 밝혔다. 이대성이 무리한 덩크슛 시도를 하다 시즌아웃을 당한 적이 있어 유 감독의 시선은 당연했다.
농구에서 덩크슛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이 있다. 탄력이 뛰어난 선수가 즐비한 미국에서는 평범한 레이업슛을 시도할 때 블록슛을 당할 위험이 있다. 이 때 덩크슛을 시도하면 최소 파울을 얻을 수 있어 위험부담이 덜하다. 잘 되면 덩크슛 성공에 추가 자유투까지 기대할 수 있다. 물론 덩크슛을 자유자재로 쏠 수 있는 선수들에게 국한되는 이야기다. 한국에서 수비수를 뿌리치고 덩크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국내선수는 없다.
미국 지도자들은 선수들의 덩크슛 시도를 선호할까. 꼭 그렇지 않다. 반드시 덩크슛이 필요한 상황이 아니라면 지도자들은 동서를 막론하고 대부분 안전한 2점을 선호한다.
지난 3월 미국대학농구 NCAA 토너먼트 32강전에서 우승후보 1번 시드 듀크대학은 16번 시드 무명 로버트 모리스대학을 상대했다. 듀크는 후반전 종료 15분 21초를 남기고 51-32로 크게 앞섰다. 이 때 1학년 자릴 오카포(19, 필라델피아 세븐티식서스)가 속공 상황에서 멋들어진 리버스 덩크슛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다. 마이크 슈셉스키 듀크대 감독은 곧바로 오카포를 강하게 질책했다.
이날 오카포는 21점을 넣었다. 11개의 슛 중 2개만 실패했다. 그 중 하나가 덩크슛이었다. 승패에 크게 상관없는 상황이라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전설의 감독' 슈셉스키의 생각은 달랐다.
슈셉스키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 아주 간단한 메시지다. 농구를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특히 연속경기를 뛰어야 하는 토너먼트에서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무조건 넣어야 할 쉬운 기회였다”며 열변을 토했다. 경기 중 덩크슛을 하지 말란 소리는 아니다. ‘크게 이긴다고 방심하는 자세로 토너먼트에서 절대 우승할 수 없다’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오카포는 “덩크를 실패한 뒤 내 자신을 돌아봤다. 무슨 생각을 했는지 나도 알 수 없었다”며 반성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오카포는 심기일전했다. 결국 결승전까지 승승장구한 듀크대는 위스콘신대를 꺾고 우승까지 차지했다.
선수와 팬들은 화려한 덩크슛에 열광한다. 하지만 감독은 언제나 안전한 2득점을 원한다. 그 ‘밀당’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
[사진] 멤피스대학시절 조 잭슨(위), 듀크대학시절 오카포(아래) / ⓒAFPBBNews = News1(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