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 최고가드 조 잭슨(23, 오리온)의 기량이 국내 가드진에게 자극이 되고 있다.
서울 SK는 지난 달 31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2016 KCC 프로농구 4라운드서 홈팀 인천 전자랜드를 92-78로 물리쳤다. 13승 23패의 SK는 8위를 지켰다. 6연패에 빠진 9위 전자랜드(11승 25패)는 ‘꼴찌’ LG(10승 25패)에 반 경기 차로 쫓기는 신세가 됐다.
내용 면에서 SK 가드진이 전자랜드를 압도한 경기였다. SK는 무려 10개의 스틸에 성공하며 이를 속공으로 연결해 승리했다. 전자랜드는 12개의 실책을 범하며 무너졌다. 김선형은 14점, 7어시스트로 활약하며 드워릭 스펜서(23점)와 함께 승리를 이끌었다.

김선형은 4쿼터 화려한 더블클러치를 선보였다. 그는 간결한 방향전환 드리블을 통해 순식간에 수비수 김지완을 제치고 림으로 돌진했다. 리카르도 포웰이 블록슛을 위해 점프했다. 김선형이 슈팅할 수 있는 각도가 거의 나오지 않았다. 김선형은 반대편 림을 보고 점프한 뒤, 오른손을 크게 휘저어 백보드 상단을 맞췄다. 회전이 먹은 공은 보기 좋게 림에 빨려들었다. 짧은 순간에 터진 2득점이지만, 다양한 기술이 한꺼번에 녹아 있는 멋진 플레이였다.
경기 후 김선형에게 더블클러치에 대해 물었다. 그는 “확실히 조 잭슨과 한번 붙고 나서 내가 갖고 있는 기술을 업그레이드 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미국에서 스킬트레이닝을 받고 왔다. 조 잭슨이 바로 그렇게 드리블을 하더라. 그 선수는 항상 그렇게 농구를 해왔다. 따라가기 힘들겠지만 나도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 그런 움직임을 하려다보니 더블클러치도 나왔다”고 했다. 잭슨에게 자극받아 개인기를 연마하다보니 더블클러치도 나왔다는 말이다.

잭슨은 단신외국선수 제도의 모범사례로 꼽힌다. 그의 신장은 180cm에 불과하지만 선수 한 두 명은 언제든 쉽게 제칠 수 있는 개인기를 보유하고 있다. 애런 헤인즈 부상 후 출전시간이 많아진 잭슨은 심리적 여유도 찾았다. 최근 7경기서 잭슨은 평균 20.6점, 6.3어시스트, 1.9스틸, 3점슛 42.3%를 기록 중이다. 명실상부 KBL 최고의 가드다.
지난 크리스마스 맞대결에서 잭슨은 16점, 11어시스트, 3스틸을 기록하며 김선형(8점, 5어시스트)에게 우위를 보였다. 팀은 SK가 이겼지만, 개인대결에서는 잭슨이 위였다. 김선형은 “선수들은 서로 붙어보면 안다. 스피드와 기술에게 내가 잭슨에게 진 경기”라고 냉정하게 돌아봤다. 보통 선수라면 잭슨의 개인기에 탄복하고 그냥 포기할 뿐이다. 하지만 김선형은 잭슨의 개인기를 자기 것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국내선수에게 기술의 중요성을 자극한다는 점에서 잭슨은 큰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팬들은 보통 잭슨의 화려한 드리블과 뛰어난 탄력에 주목한다. 잭슨은 김종규와 김주성을 앞에 두고 덩크슛을 터트릴 정도로 대담하고 점프가 높다. 이런 플레이를 할 수 있는 배경에는 탄탄한 기본기가 깔려있다. 잭슨은 드리블을 할 때 자세가 굉장히 낮고, 항상 시선은 좌우를 살핀다. 지도자들이 항상 강조하는 농구의 기본이다. 하지만 제대로 실천할 수 있는 선수가 몇 명 없다.
문경은 SK 감독은 “요즘 프로농구에서 골밑에 패스를 제대로 넣어줄 수 있는 가드가 거의 없다”고 지적했다. 한눈에 상대 수비흐름을 읽고 패스를 넣어줬던 강동희, 이상민, 김승현 같은 가드가 없다. 김선형 역시 포인트가드로서 역량은 많이 부족한 편이다. 이러한 프로농구 상황에서 잭슨의 활약은 매우 고무적이다.
시즌 초반 지역방어 공략에 애를 먹었던 잭슨은 이제 이승현과의 투맨게임이 빛을 발하고 있다. 갑자기 없던 능력이 생긴 것은 아니다. 심리적 영향이 크다. 오리온 관계자에 따르면 잭슨은 ‘뭔가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했다. 신장이 늘 작다보니 살아남기 위해 남보다 더 빠르고 강해야 했다. 잭슨이 필사적으로 개인기를 연마한 이유였다. 처음 온 해외리그인 KBL에서 잭슨은 출전시간이 적어 컨디션 관리가 어려웠다. 하지만 2,3쿼터 외국선수 2명이 출전하며 출전기회가 늘어난 뒤 잭슨의 플레이에도 여유가 생겼다.
잭슨의 공격적인 태도도 국내선수들에게 찾아보기 어려운 점이다. 국내선수들은 속공 아웃넘버상황에서도 림을 공략하지 않고 공을 외곽으로 돌려 답답함을 자아낸다. 속공에 실패했을 때 질책이 두려워 안전한 선택을 하는 것. 반면 미국선수들은 과감하게 림에 돌진해 바스켓카운트를 노린다.

잭슨은 SK전 4쿼터 종료 3분을 남기고 76-76으로 맞선 상황에서 과감하게 덩크슛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은 림을 맞고 튀어나왔고, 곧바로 오용준이 3점슛을 터트려 승기를 잡았다. 추일승 감독이 단단히 화가 날 정도로 치명적인 플레이였다. 결과는 실패지만, 잭슨의 승부사기질은 높이 살만하다. 국내선수라면 ‘덩크슛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덩크슛을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잭슨은 30일 동부전에서 1000블록슛을 눈앞에 둔 김주성을 앞에 두고 덩크슛을 작렬했다. 이게 결정적인 차이점이다.
잭슨의 존재는 국내가드들에게 큰 자극이 되고 있다. 김선형처럼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배워야 한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