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생번트 리그 2위, 기동력 야구 무색
주력 갖춘 젊은 선수들이 모두 '히든카드'
“무려 번트를 110개나 댔다. 110개나…”

지난해 11월 열린 SK의 가고시마 특별캠프 당시 2015 시즌을 돌아보던 김용희 SK 감독은 한 대목에서 큰 한숨을 내쉬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바로 희생번트 급증에 대한 이야기였다. “변명할 생각은 없다”고 했지만 김 감독은 수치를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SK는 지난해 총 110개의 희생번트를 대 리그 2위에 올랐다. 한화(139개)에 이어 리그에서 두 번째로 많았다.
희생번트의 효용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기대득점을 깎는다는 지적도 있지만, 반드시 대야 하는 상황도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남발하면 독이 된다는 것이 여러 통계 분석치에서 드러난다. 더 뼈아픈 것은 큰 그림의 스케치도 못했다는 점이다. 김용희 감독은 기동력을 통한 공격적인 야구를 선호한다. 그런 SK가 희생번트를 두 번째로 많이 댔으니, 뭔가 앞뒤가 맞지 않았던 시즌임에는 분명한 것이다. 김 감독의 한숨도 이와 연관이 되어 있다.
성적은 내야 하는데, 타선이 정말 답답하게 터지지 않았던 SK다. 최정 김강민 등 주축 선수들의 부상 속에 응집력도, 일발장타력도 사라졌다. 여기에 김 감독이 추구했던 기동력 야구도 처절한 실패로 끝났다. 뛰어야 할 선수들은 부상과 노쇠화로 이미 다리가 예전만 못한 상황이었다. SK는 지난해 팀 도루가 94개로 리그 9위였다. 성공률은 61.4%로 최하위에 머물렀다. 희생번트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일각에서는 “김용희 감독이 SK 선수들의 기동력을 너무 높게 평가했다”라는 말도 나온다. 실제 김 감독은 지난해 시즌이 들어가기 전 김강민 이명기는 30도루, 최정 브라운도 15도루 이상이 가능할 것이라 내다봤다. 팀 도루 200개 목표도 그런 계산 속에서 나왔다. 하지만 한 해설위원은 “최정은 더 이상 20개의 도루를 기록할 만한 몸이 아니었다. 김강민 조동화의 주력은 계속 떨어지고 있다”고 잘라 말한다. 베테랑 선수들의 도루 페이스 감소를 고려하면 일리는 있는 말이다. 결국 기동력 야구를 하려면 새로운 피에서 대안을 찾아야 한다.
김 감독이 가고시마 특별캠프에서 가장 중점을 둔 것도 다시 ‘기동력’이었다. SK 타선이 리그 정상을 다툴 만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뛸 만한’ 잠재력도 키워야 한다. 그러려면 반드시 젊은 선수들이 성장해야 한다. 팀 내 육상부로 불리는 김재현 이진석 박계현 유서준 등이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김 감독은 “가고시마 캠프에서 이러한 선수들이 많이 성장을 했다. 자리를 잡는다면 팀 기동력도 획기적으로 좋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걸었다.
가고시마 특별캠프에서 임시주장을 맡았던 김재현은 자타가 공인하는 리그 최고의 스프린터 중 하나다. 단순한 달리기보다 베이스러닝에 특화되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는 대주자 이상의 잠재력을 보여줘야 한다. 박계현 유서준 이진석도 빼어난 주력을 갖추고 있다. 기초적인 신체능력에 경험을 통한 주루 센스까지 갖춘다면 이미 뻗어나가고 있는 이명기와 함께 향후 10년간 SK의 기동력을 책임질 선수들로 각광받는다.
관건은 이들이 출전시간을 늘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단순히 발만 빠르다고 해서 주전으로 기용할 수는 없다. 공격도, 수비도 되어야 한다. 일단 도전장은 내밀었다. 김재현은 외야 한 자리를 놓고 경쟁 중이고, 애리조나-가고시마-대만으로 이어지는 훈련 세계일주를 한 이진석도 급성장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계현은 2루에서, 유서준은 내야 전 포지션에서 기존 주전 선수들을 위협하고 있다. SK가 올해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이들이 히든카드로 급부상해야 한다. 그라운드 위에서 심장이 터질 듯한 숨막히는 질주를 이끌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skullboy@osen.co.kr
[사진] 유서준(왼쪽)-이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