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재기도전]'인동초' 한기주, KIA 중심에 다시 선다
OSEN 이선호 기자
발행 2016.01.05 06: 00

작년 3년간의 치명적 부상과 재활 딛고 1군 복귀 
첫 마무리 훈련 완주, 전지훈련 참가 '재기 청신호'
"어쩌면 긴요한 선수가 될 수 있다".

지난 해 11월 오키나와에서 펼쳐진 KIA 마무리 훈련에서 조계현 수석코치는 "한기주가 내년 시즌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고 기대감을 표시했다. 기자가 "어떤 점에서 그러냐"고 묻자 "얼굴 표정이 확실히 달라졌다"고 말했다. 이어 "볼을 던지는 것이 많이 좋아졌다. 그리고 선수들은 자신감이 있으면 얼굴에서 드러난다"고 설명했다. 3년 넘게 부상에 시달렸던 한기주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 한 것이다. 
한기주에게 '부상'과 '재활'이라는 말은 지겨운 단어이다. 2006년 계약금 10억원을 받고 입단할 때는 괴물의 능력을 기대받았다. 실제로 역전 4강을 이끈 일등공신이었다. 불펜에서 어깨가 빠질정도로 던져 팀을 4강에 올려놓았다. 44경기에 출전해 140⅔이닝을 소화했을 정도였다. KIA는 2005년 꼴찌에서 단숨에 가을야구로 직행했는데 한기주가 없었다면 어불성설이었다. 
그러나 고교시절의 혹사에 프로 첫 해의 고생까지 겹치면서 팔꿈치 상태는 심각했다. 이후 소방수로 자리를 잡고 2007년 55경기 25세이브와 2008년 46경기 26세이브를 따냈다. 특히 2007년에도 소방수로 많은 경기에 많은 이닝(70⅓)을 던졌다. 결국 소방수를 접고 선발투수로 전환하려고 했지만 부상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다.
2009년 26경기를 뛰었고 2010년은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느라 통째로 쉬었다.  재기는 더뎠다. 2011년 16경기, 2012년 16경기에 그쳤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손바닥과 어깨수술까지 받느라 2015년 중반까지 마운드에 돌아오지 못했다. 재활의 터널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한때 개인 재활 트레이너에 몸을 맡기기도 했다. 
투수에게는 치명적인 어깨 수술까지 받아 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때 수호신이었던 한기주에 대한 기대치도 떨어졌다. 매년 초반 전력구상에서 전력외 선수로 분류되었다. 한기주는 포기 대신 묵묵히 재활의 시간을 버텨냈다. 그런 한기주가 작년 1군 마운드로 돌아왔다. 7월 16일 광주 LG전에 복귀투구를 했다. 비록 7경기만에 다시 1군에서 빠졌지만 재기 가능성을 알린 귀중한 경험이었다. 
한기주는 8월 중 1군에서 빠졌지만 꾸준한 체력훈련을 펼쳤다. 이어 가을 마무리 캠프에 참가해 한 달간의 강훈을 완주했다. 2005년 고교 3학년 신분으로 가을캠프에 참가한 이후 처음이었다.  부상 때문에 가을캠프는 그에게 익숙치 않는 곳이었다. 오키나와에서 후배들과 함께 충실하게 훈련을 했다. 얼굴도 한층 밝아졌다.  
이틀 간격으로 불펜투구를 하면서 기대감을 안겨주었다. 당시 볼을 받았던 불펜포수는 "스피드와 볼의 힘이 좋아졌다. 내년에도 1군에서 활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기주는 예전의 광속구는 잃었지만 제구력과 변화구에서 답을 찾고 있다. 투구수 발을 내딛는 투구동작도 한결 간결하게 만들었다. 
새해는 붙박이가 아니더라도 1군의 불펜에서 소금 노릇을 기대받고 있다. 물론 수 년동안의 공백, 부상 재발 등 변수는 여전하다. 그러나 4년만에 애리조나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만큼 재기 가능성도 크다. 풍부한 경험을 갖춘 만큼 1군 요원으로 활약한다면 마운드는 천군만마를 얻는다. '한기주 부활'. 불펜이 아쉬운 KIA 마운드가 가장 듣고 싶어하는 말이다. /sunn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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