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 예쁜 폼 집착이 낳은 김현수 미지명
힙겹게 신고선수 입단, 스카우트 중요성 입증
"입단식도 못 가는 연습생이었는데, 이게 진짜 신기해 나는 전광판이…"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만약 김현수(28,볼티모어)가 메이저리그 주전선수로 자리 잡는다면 후대까지 계속해서 기억될 한 마디일지 모른다. 2015년이 저물기 전, 김현수는 메이저리그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정식으로 사인을 하고 홈구장인 캠든 야드에 첫 발을 내딛었다. 텅 빈 야구장 전광판에 김현수를 환영하는 영상이 흘러 나왔고, 감회에 찬 김현수는 이렇게 말했다.
김현수는 또 한 명의 연습생 신화를 쓴 인물이다. 신일고 시절 컨택 능력 하나만큼은 인정받았던 김현수는 놀랍게도 프로팀의 지명을 전혀 받지 못했다. 이는 여전히 KBO 리그 미스터리 중 하나로 꼽힌다. 여러 팀이 김현수를 지명 후보로 올려놓았다는 이야기는 많았어도, 10라운드까지 호명되지 않은 건 미스터리다.
두산에 신고선수(현 육성선수)로 입단한 김현수가 프로에서 어떤 족적을 남겼는지는 이제 너무 잘 알려졌다. 풀타임 2년 차인 2008년 타격왕을 차지한 이후 올해까지 대한민국 최고의 외야수로 활약했다. 결과론이지만, 당시 구단들은 왜 김현수를 못 알아봤을까.
이진오 트레이너는 선수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국가대표 트레이너를 지냈다. 1994년부터 10년 넘게 대표팀 선수들의 몸을 책임졌고, 이후 롯데 트레이너로 작년까지 계속해서 일했다. 지금은 부산 센텀호텔 'PIC 클리닉' 대표로 선수들을 돌봐주고 있다.
2005년, 이진오 트레이너는 학부모들의 요청으로 신일고에 파견근무를 나갔다. 여기서 3학년 김현수와 모상기(kt), 임한용(KIA) 등 주축 선수들을 만났다. 그리고 1학년이었던 이대은(지바롯데)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당시를 떠올리며 이진오 트레이너는 "보통 고등학생들은 웨이트 트레이닝이 지겨워서 싫어하는데, 신일고 선수들은 자기들이 먼저 나서서 다들 운동에 재미를 붙이고 열심히 했다"고 말했다.
특히 김현수에 대해서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스쿼트 280kg을 할 정도로 운동도 열심히 했고, 힘도 좋았다. 그 정도는 역도 선수들이나 하는 무게인데, 김현수는 그때부터 근육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래서 나중에 꼭 성공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게 이진오 트레이너의 말이다.
하지만 정작 김현수는 지명을 받지 못했다. 가까이서 이를 지켜봤던 이진오 트레이너는 "스카우트들이 너무 김현수를 대충 봤다. 그만큼 가능성이 있는 선수인데, 스카우트들은 자기 기준에 맞지 않다 싶은 선수들은 경기 중에도 제대로 안 보기 일쑤였다. 김현수는 고3때 성적이 좋았지만, 스카우트들이 제대로 점검을 안 했으니 지명을 받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폼. 스카우트는 선수들의 '폼'을 보고 잠재력을 평가한다. 이른바 '예쁜 폼'으로 야구를 하면 높게 본다. 이진오 트레이너는 "그래서 신일고 선수들한테 '예쁜 폼으로 야구를 해라'고 자주 이야기했다. 김현수가 다리도 빠르고 어깨도 정말 강한데, (고교시절에는) 달리기와 던지기 모두 폼이 조금 덜 다듬어졌었다. 스카우트들은 그래서 김현수를 체크리스트에서 뺀 것 같다"고 김현수 미지명의 두 번째 이유를 밝혔다.
신인지명에서 슬픔의 눈물을 삼킨 김현수는 신고선수 입단도 순탄치만은 않았다. 당시 정삼흠 신일고 감독은 LG에 김현수를 추천했지만 입단까지 이어지지 않았다. 이진오 트레이너 역시 롯데에 김현수를 소개했지만, 마찬가지로 롯데 역시 영입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대신 두산이 손을 내밀었는데, 이진오 트레이너는 "그때 양승호 스카우트 팀장이 김현수를 데려갔다. 신일고 후배이기도 했지만, 계속 눈여겨본 선수라 두산 구단에 강력하게 추천한 걸로 안다"고 말했다.
이진오 트레이너는 작년을 끝으로 프로구단 트레이너를 그만뒀다. 그래도 그는 "요즘 김현수, 이대은이 각자 좋은 모습을 보여줘서 정말 기쁘고 행복하다. 어릴 때부터 기초운동에 힘을 쓴 덕분에 프로에 가서도 부상없이 활약을 펼칠 수 있었다. 이제 아마추어 선수들을 도와주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10년 전 이야기다. 김현수가 만약 다른 팀에 입단했다면 어떤 모습을 보여줬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분명한 건 김현수가 미지명의 아픔을 딛고, 넘치는 재능에 피나는 노력까지 더했기에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수 있었다. /cleanupp@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