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욕심은 끝이 없으니까, 허허.”
하기야, 예로부터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했으니. 프로야구 판에서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게 무엇이겠는가.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경쾌하고 밝았다. 그도 그럴 것이 FA 불펜투수 최대어 정우람 등 믿음직한 투수들을 보강, 지난해 보다 한층 더 전력이 강화된 팀을 이끌게 됐으니 김성근(74) 한화 이글스 감독이 표정관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올해 목표는 당연히 우승이겠지요.”라고 툭 던지니 김 감독은 “응, 일단은”이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서슴없었지만 단서가 달렸다.
“우승 시나리오? 팀은 그런 방향으로 싸움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 말 속에 우승을 향한 열망과 자신감, 그리고 우승에 이르기까지 가야할 길에 대한 큰 구상이 읽힌다.
한화 선수단은 지난 11일에 김성근 감독의 주도로 전체 미팅을 가졌다. 그 자리에서 김 감독은 한화 선수단이 나아가야할 바와 목표를 뚜렷이 했다.
“올해 테마는 ‘우리는 하나’라는 것이다. ‘나’라는 의식 속에 빠지지 말고 하나로 뭉치고 단결해야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해 막판에는 ‘한화라는 의식’이 모자란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처음부터 하나라는 의식을 가지고 간다. 각자가 할 분야, 일자리가 있다. 완수(우승을 뜻함)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창조나 창의력이 중요하다. 그 게 우리 팀 과제다. 나를 비롯해 코치, 선수 모두 그렇다.”
김성근 감독은 여태껏 자신이 지향, 지속해온 훈련 방식을 올해 봄철 훈련부터 바꾸기로 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걸 스스로 손을 대야 직성이 풀렸던 예전의 방식과는 거리가 있다. ‘김성근식 야구’와는 딴판이다. 아주 낯선 실험이다. 그렇다고 ‘총연출 김성근’의 큰 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닐 게다.
“캠프 때 코치를 분야별로 전담시키기로 했다. (코치들의 임무를 나누어) 하루 종일 번트만 가르치거나 견제구만 가르치도록 하는 것이다. 나로선 획기적인 계획이다. 지난 해 가을 훈련 때 코치들에게 맡겨서 시도해봤으나 더 깊이 들어갈 필요가 있어 아예 그런 식으로 훈련을 시키기로 한 것이다.”
훈련 가짓수 뿐 만 아니라 특정선수들을 특정 코치가 전담하는 세밀한 방법도 시도한다. 그의 말마따나 “그 분야에 대한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게 하도록” 고안해낸 훈련 방법이다. 이른바 훈련을 시스템화하는 것이다.
“책임소재도 분명히 하고, 분야도 나눌 것이다. 나는 전체적으로 보고 움직일 때는 움직일 것이다.”
지난해 한화는 마지막까지 전력투구했다.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를 긴급 수혈, 5위 진입에 온힘을 다 기울였지만 결국 68승 76패, 5위 SK 와이번스에 2게임차로 뒤져 6위에 머물렀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막판에 힘이 달린 것은 마운드도 있었겠지만 그 속에서 변화를 꾀하지 못했다. 예전의 방법을 그대로 썼다. 이판사판이었는데 ‘뭔가를 찾아냈으면 돌파구가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되돌아봤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던 변화 속에 찾아내야했던 그 ‘뭔가’는 무엇일까. 절체절명 승부처에서 그 무엇을 잡아낸다는 것.
김성근 감독의 통절한 반성문이다.
“잡는 게임(또는 잡을 수 있는 게임이라고 해도 되겠다)과 내줄 게임(잡을 수 없는 게임)을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긴박했기 때문에 모든 게임에 전력투구했다. 초조한 마음이 팀에 있었다. 내가 여유를 가져야 했는데, 그런 여유가 없었다. 내가 반성한다.”
사실 그랬다. 지난 시즌 막판 TV 중계 화면에 언뜻언뜻 비친 김성근 감독의 표정에는 초조함이 여과 없이 묻어났다. 그 반성을 발판 삼아 그는 우승을 향한 밑그림을 그리고 전략을 짜나가고 있다.
“NC는 작년에 우리가 쩔쩔맸다. 11패나 해버렸으니까. 넥센도 어떻게 대처하느냐, 두산도 그렇고.”
그의 입에서 우선 경계해야할 팀이 나온다. NC와 넥센, 두산이었다. 한화는 지난해 NC에 5승 11패, 넥센에 6승 10패로 적자폭이 컸다. 넥센을 대상으로 꼽은 것에 대한 설명이 뒤따랐다.
“남의 감독 얘기를 하는 건 좀 뭣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선수를 잘 만든다. 선수가 없으면 없는 대로 잘 만들어낸다. KIA와 kt는 새로워져 재미있을 것이다. 어찌됐든 지난해와 같은 페넌트레이스는 안 될 것이다. 지난해 4월에 kt를 만났던 팀은 6, 7승을 주웠다. 올해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다. 끝까지 엎치락뒤치락 하리라고 본다.”
일반적인 예상이기도 하지만 올해 프로야구 판은 절대강자 없이 춘추전국시대로 흐를 것이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김성근 감독 역시 그런 예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팀 운영 구상이 더욱 치밀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캠프에 가서 선발, 마무리를 결정하겠지만 정우람과 윤규진을 더블 마무리 생각하고 있다. 아직 외국인 선수 선발이 끝나지 않아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윤규진이 회복 되면 뒤로 가고, 안 되면 심수창이 뒤로 간다. 윤규진의 몸이 가볍다고 한다. 캠프에 가서 얼마나 던지는 지 봐야한다.”
김성근 감독은 “지난해 힘이 달린 것은 투수가 모자란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 면에서 올해는 달라졌다. 외국인 투수 에스밀 로저스라는 확실한 에이스 카드가 시즌 개막부터 가동되고 이재우, 송신영 등 노련한 투수들도 데려왔다.
“로저스는 99%는 괜찮데 1%가 걱정이다. 우리 야구에 익숙해져 선수 본인이 어떤 식으로 움직일까하는 것이다. 선수가 알아서 하겠지만. 무엇보다 베테랑 투수들, 이재우와 송신영이 왔으니까 이어갈 수 있는 야구를 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에는 권혁이나 박정진 두 불펜 투수에게 부담을 줬는데 올해는 이어갈 수 있는 투수들이 많이 생겨 기대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의 구상대로라면, 한화 불펜의 상습 과부하가 상당히 해소될 전망이다. ‘불펜 방화’가 줄어드는 만큼 한화의 승률도 올라갈 것이다. 계산이 서는 김성근 야구가 빛을 발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이야기 하자면 한이 없다. 3, 4, 5번은 어떻게 하고, 용병 야수는 내야나 외야, 아니면 지명 타자감으로 뽑을 것인지. 수비는 또 어떻게 할지….”
그의 고민은 계속된다. 하지만 올해는 어찌 보면 즐거운 고민이다. 한화 이글스 선수단은 15일 전지훈련지인 일본 고치로 떠난다. 김성근 감독의 구상이 무르익어 올 시즌 어떤 완성품을 내놓을지 지켜볼 일이다.
/홍윤표 OSEN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