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성 훈련 집중, 200이닝 체력 만든다
"최선 다한 뒤 FA 평가 받는다" 각오
시속 160㎞에 가까운 공이 타자를 얼어붙게 했다. 세계가 놀란 강속구였다. 그러나 상대 마운드에 서 있는 한 투수를 지켜보는 김광현(28, SK)의 눈에는 스피드건의 구속이 들어오지 않았다. 오히려 다른 부분이 더 인상 깊게 들어왔다. 배움이 있었고,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

배움에는 국경도, 상대도, 나이도 상관이 없었다. 김광현이 유심히 지켜본 투수는 일본 대표팀의 괴물 투수 오타니 쇼헤이(22, 니혼햄)였다. 오타니는 지난해 11월 열린 프리미어12 당시 한국과의 경기에 두 차례 등판해 한 점도 실점하지 않는 완벽투로 국내 팬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었다. “10년 라이벌이 등장했다”라는 말도 심심찮게 나왔다. 김광현도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털어놓는다. 단순히 구속이 아니었다. 신체의 유연성,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에서 배울 것이 많았다고 말했다. 자존심과는 관계가 없었다. 오타니의 장점을 설명하는 김광현의 눈빛이 반짝였다.
김광현이 가장 큰 인상을 받은 것은 오타니의 유연함이었다. 오타니는 프로필상 193㎝의 장신에도 불구하고 뻣뻣하다는 인상이 없다. 유연하게 움직이며 에너지 손실 없이 마지막까지 공을 끌고 나온다. 빠른 공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김광현은 “상대 투수로 던지기도 했지만 준결승 때도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마음가짐을 떠나 기술적으로 봤을 때 ‘나도 이렇게 던지면 좋겠구나’라는 몇 가지 포인트를 봤다”라고 말을 이어갔다.
특히 유연성에 대한 절실함을 느꼈다고 했다. 김광현은 “하체를 아주 잘 쓴다. 유연하다. 하체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구속은 물론 공 끝도 달라지는 것 같다. 오타니의 경우는 골반이 유연하고 또 활용을 잘한다”라면서 “나도 예전에는 내 몸이 유연한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오타니라는 투수를 보면서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생각했다”고 당시의 시사점을 떠올렸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머리에서만 맴돌지 않고 있다. 김광현이 오프시즌 중 가장 중점을 뒀던 것도 유연성이었다.
김광현은 오프시즌 중 몸 관리에 총력을 기울였다. 김광현은 “시즌 후반에 체력이 떨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난 2년간 시즌 중이나 끝나고 대표팀에 가고 그래서 쉴 시간이 없었다. 체력을 보충하는 관리를 많이 했다”라면서 “체조와 스트레칭을 많이 했다. 지금 한국야구에서도 트레이너분들이 골반의 유연성을 많이 강조하신다. 선수들이 와 닿지 않으니 많이 못 느끼는 경우는 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느낀 것 같다”라고 말했다. 새로운 목표, 새로운 방향을 잡은 김광현은 후련한 표정이었다.
지금도 국내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김광현이다. 그러나 더 발전하고자 하는 욕구는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 숨쉰다. 주위에서 최고라고 치켜세울 때도 한 번도 게을러지지 않은 선수다. 부상으로 잠시 쉰 시간을 제외하고 꾸준히 정상급 자리를 이어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그런 김광현은 올해 목표로 200이닝을 내걸었다. 김광현의 한 시즌 최다 이닝은 2010년 193⅔이닝이다. 지난해에는 두 차례 정도 선발 로테이션을 거르는 바람에 176⅔이닝 소화에 그쳤지만 올해는 반드시 그 벽을 뛰어넘겠다는 각오다.
김광현은 “지난해는 막상 더울 때는 잘 이겨냈던 것 같은데 날이 선선해지면서 금방 지치는 경향이 있었다. 유지할 수 있는 체력을 길러야 한다”라며 1차 캠프에서 이를 완성시키겠다고 다짐했다. 대신 성적에 대한 욕심은 없다고 덧붙였다. FA를 앞두고 있지만 의식하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메이저리그(MLB) 진출과 관련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팀의 승리에 기여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한 뒤 겸허한 자세로 평가를 기다리겠다는 게 솔직한 속내다.
김광현은 “기록과 같은 쪽의 생각은 버렸다. FA에 대한 평가는 어느 정도 다 끝났다고 생각한다. 욕심을 부리다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다. 있는 모습 그대로 던지겠다. 잘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미소지었다. 2년간 재기의 발판을 닦은 김광현이 새로운 깨달음, 홀가분한 마음가짐과 함께 플로리다로 떠난다. 많은 것을 가지고 돌아올 수 있다면, SK 에이스의 전성기는 지금부터 시작될 수 있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