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우는 삼성 왕조 건설의 중심에 서 있었다. 류중일 감독의 집권 첫해부터 줄곧 4번 타자로 활약하며 통합 4연패 달성에 큰 공을 세웠다. '삼성의 4번 타자'라는 타이틀은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빛났다.
하지만 최형우에게 지난해는 아쉬움 그 자체였다. 정규 시즌 144경기 모두 소화하며 타율 3할1푼8리(547타수 174안타) 33홈런 123타점 94득점의 고감도 타격을 과시했다. 하지만 가을 잔치에서는 타율 9푼5리(21타수 2안타의 빈타에 허덕이며 자존심을 구겼다. 삼성이 두산에 1승 4패로 패한 뒤 비난의 화살을 한 몸에 받았다.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클 수 밖에.
18일 삼성의 1차 전훈 캠프가 차려진 괌 레오팔레스 리조트에서 만난 최형우는 지난해의 아쉬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에서다. "아쉽다. 우리 팀 선수라면 누구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후반기 들어 타격감이 떨어졌는데 시즌이 끝나고 나서야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이제 와서 말해봤자 그저 변명에 불과하기에‥".

무엇보다 가을 무대에서의 부진은 영원히 잊지 못할 듯. 최형우는 "동료들에게 '공이 수박처럼 크게 보인다'고 늘 말했었는데 이상하게도 방망이가 안 맞았다. 감독님께서 계속 믿어주시는데 결과가 그렇게 나오니 더 죄송했다"고 고개를 떨궜다.
최형우는 평소 어떠한 상황에서도 평정심을 잃지 않는 편이나 한국시리즈 준우승 직후 화를 삭히지 못했다. "동료들에게 가장 미안했다. 감독님께서도 꾸준히 기회를 주셨는데 4번 타자로서 제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최형우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렇다고 이대로 무너질 순 없다. 최형우는 백상원, 김재현 등 후배들을 이끌고 예년보다 일찍 괌 캠프에 입성했다. 지난 날의 아쉬움을 떨쳐내기 위해 방망이를 휘두르고 또 휘둘렀다. 류중일 감독은 최형우의 타격 훈련을 지켜본 뒤 "일찍 들어와서 열심히 한 것 같네"라고 흡족한 반응을 보였다.
최형우는 박석민과 야마이코 나바로의 이적 공백과 관련해 "두 선수가 빠진 게 아쉽지만 나머지 선수들의 기량이 워낙 뛰어나기에 작년보다 약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면서 "언론을 통해 우리 팀 전력이 약해졌다는 평가가 나올때마다 선수들 모두 '한 번 보여주자'고 말한다. 약하다는 평가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고 대답했다.
늘 그렇듯 타이틀에 대한 욕심은 전혀 없다. 최형우는 "팀이 이기는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힘줘 말했다. 2등의 설움을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기에. "4번 타자로서 중요한 상황에서 한 방을 터뜨리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최형우가 올 시즌 정상 탈환을 위해 다시 한 번 스파이크 끈을 조여 맨다. /what@osen.co.kr
[사진] 괌=손용호 기자 spjj@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