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력 꿈틀’ 8연승 현대캐피탈, 성장은 진행 중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1.26 06: 07

기존의 틀 깨는 창의적 시도에 자신감
8연승 신바람 행진, 성장은 아직 진행 중
모든 선수들이 자신의 자리를 제대로 지키기 어려운 랠리 상황. 세터 또한 정중앙에 위치하지 못했고, 라이트 공격수는 도약 거리를 확보하지 못했다. 대개 이런 상황에서 예상할 수 있는 플레이는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반대편에 공을 띄워주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현대캐피탈의 배구는 이런 고정관념을 거부한다. 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세터 노재욱은 자신의 바로 뒤에 위치하고 있었던 라이트 공격수 문성민에게 백A퀵을 올려줬다. 그리고 문성민은 마치 센터처럼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상대편 코트에 강스파이크를 꽂아 넣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패턴에 상대 블로커는 따라붙을 수 없었다. 25일 인천계양체육관에서 열린 대한항공전에서 나온 현대캐피탈의 모습이었다.
라이트 공격수가 백A퀵을 시도하는 것 자체가 보기 드문 일일뿐더러, 호흡이 완벽하게 맞아 떨어졌다는 점은 희귀를 넘어 신기할 정도였다. 하지만 ‘스피드 배구’가 점차 정착되고 있는 현대캐피탈은 V-리그에서 최초로 이런 배구를 시도하고 있다. 우연히 성공된 공격도 아니었다. 경기 후 문성민은 “평소에 연습을 할 때 속공도 때려보곤 한다. 잘 맞으면 경기 때도 시도해보자고 (노)재욱이랑 이야기하곤 한다”고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했다.
최태웅 감독은 올 시즌 ‘스피드배구’라는 신개념을 V-리그에 불어넣고 있다. 전원 수비, 전원 공격의 형태에 가깝다. 그렇다면 문성민의 백A퀵이 최태웅 감독의 머릿속에 구상된 고도의 작전이었을까. 그렇지는 않다는 데 더 놀라운 점이 있다. 최 감독은 “전혀 아니다. 그런 플레이를 하라고 지시한 적은 없다. 선수들끼리 자율적으로 맞춰보는 것”이라고 스스로도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최 감독은 “성공하지는 못했는데 지난 경기에서는 (센터) 최민호가 시간차 공격을 때리길래 나도 깜짝 놀랐다”라고 너털웃음을 지었다. 센터가 날개 공격수처럼 움직인 것이다. 이 역시 최 감독이 만들어놓은 스피드배구의 패턴에는 없는 구상이다. 어찌 보면 모험이자 상황에 따라서는 확률 낮은 도박이 될 수도 있다. 감독으로서는 가슴이 조마조마한 일. 하지만 최 감독은 “그렇게 했다고 해서 뭐라한 적은 한 번도 없다”라고 이야기했다.
세터의 손끝에서, 공격수의 움직임에서, 그리고 상황에 따라 수많은 작전과 패턴이 나올 수 있는 게 배구다. 이 패턴을 얼마나 창의적으로 만들어가고 완성도를 높여가느냐는 모든 감독과 선수들의 고민이다. 최 감독은 설사 틀에서 벗어나고, 무모한 시도라고 하더라도 그런 창의성과 잠재력을 적극적으로 독려하는 스타일이다. 그런 시도 속에 상대의 허를 찌르는 기가 막힌 작전이 나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선수들을 믿지 못한다면 불가능한 일이니, ‘초보감독’ 최 감독의 두둑한 배짱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현대캐피탈은 훈련 때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도 세터 포지션에서 연습을 한다. 2단 연결 등 경기 중 발생할 수 있는 상황에 대한 대비일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시야를 넓히라는 주문이 깔려 있다. 한 번씩 타인, 동료의 시선에서 경기를 바라볼 필요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면 기계적인 훈련보다 훨씬 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서로의 고충에 대한 이해는 배려와 끈끈한 팀워크로 이어진다.
문성민의 백A퀵, 최민호의 시간차 공격은 현대캐피탈의 창의성이 조금씩 발전한다는 근사한 증거다. 최 감독은 항상 “우리 선수들은 지금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고 자신한다”고 말한다. 창의성, 그리고 주저하지 않는 시도는 그 잠재력을 깨울 수 있는 열쇠다. 2016년 들어 전승(8연승)을 달리며 리그 2위까지 올라온 현대캐피탈은 그 노상에서 아직도 성장 중이다.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은 많지만 그 성장이 끝나는 순간에는 V-리그 패러디임을 뒤바꿀 팀이 될 수도 있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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