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회 잡은 곽명우, 꿈꿨던 지도 펼친다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1.27 06: 51

뛰어난 실력에도 이민규에 가려 백업
올 시즌 입지 향상, 찾아온 기회 잡는다
눈은 그 어떤 선수 못지않게 공에 집중하고 있었다. 머리도 바쁘게 움직였다. 상황마다 다양한 시나리오가 머릿속에 떠올렸다. 자신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도를 펼칠 곳이 없었다. 그는 주전이 아니었다. 지도를 그리는 장소는 코트가 아닌 벤치, 혹은 팬들이 없는 훈련 때의 일이었다.

OK저축은행은 이민규(24)라는 정상급 세터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대학시절부터 최고 소리를 들으면서 성장했다. 지난 시즌은 팀의 기적 같은 우승을 이끌어낸 사령관이기도 했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같은 해 지명된 곽명우(25)는 주목받지 못했다. 역시 대학 최고의 세터를 놓고 다투는 인재였지만, 여러 여건상 기회는 이민규에게 먼저 주어졌다. 그리고 이민규는 한 번 잡은 기회를 쉽게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OK저축은행은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묵묵히 칼을 갈던 곽명우의 진가가 발휘되면서 누구를 주전 세터로 기용할지 결정하기가 어려워졌다. 여전히 이민규가 우선권을 쥐고 있지만 지난 시즌부터 서서히 입지를 넓히고 있는 곽명우가 선발로 나서는 경기도 제법 있었다. 경기 중에도 이민규가 흔들릴 때는 어김없이 곽명우가 투입된다. 이제는 이민규가 쉽게 주전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스타일이 다르다는 점에서 두 선수는 서로의 선생님이다. 이민규는 “부진할 때 명우형의 토스를 잘 봤는데 확실히 느끼는 점이 있었다. 슬럼프에서 탈출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다”라고 이야기한다. 곽명우도 “민규는 좋은 세터다. 타점이 높은 곳에서 빠른 토스가 나간다. 민규는 나에게 구질을 배우고, 나는 민규의 스피드를 많이 배우려고 한다. 민규가 연습할 때 나에게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고 고마워했다. 하지만 경쟁은 냉정하다. 세터는 코트에 한 명밖에 설 수 없다.
그렇게 백업에서 기회를 엿보던 곽명우는 26일 안산상록수체육관에서 열린 삼성화재와의 경기에서 맹활약하며 팀의 세트스코어 3-0 승리를 이끌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상황이 열렸다. 1세트 초반 이민규가 예기치 못한 어깨 부상을 당하며 대체로 투입된 것. 당황스러울 법도 했지만 곽명우는 안정적이고 상대의 허를 찌르는 토스로 팀의 공격을 이끌었다. 이날 삼성화재의 블로킹은 딱 한 개였다. 그만큼 곽명우의 토스워크를 따라가지 못했다.
준비된 자의 승리였다. 철저한 계산 속에 움직였다. 곽명우는 이날 경기 후 “연습하면서 생각했던 것을 그대로 했다”라고 이야기했다. 3세트 막판 시몬에게 계속 공을 올려준 것에 대해서는 “20점 후 듀스 상황에서는 에이스에게 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마침 시몬의 몸 상태도 좋았다. 다른 공격수들에게는 ‘시몬에게 올려줄 테니, 어택 커버를 부탁한다’라고 미리 이야기를 해놨다”고 설명했다. 자신만의 확실한 철학을 가지고 움직인 것이다. 타 팀 백업 세터들에게 쉽게 찾아볼 수 없는 비범함이다.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도 “토스는 좋은 선수다. 이날은 더 빠르게 잘 움직였다”고 칭찬했다.
이민규의 어깨 상태는 정확한 검진을 해봐야 안다. 다만 훈련 중에도 어깨 인대 쪽에 부상이 있어 조금 오래갈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게 김세진 OK저축은행 감독의 설명이다. 결국 곽명우의 어깨가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곽명우도 이민규의 상태에 대해 걱정하면서도 찾아온 기회에 대해서는 진지한 모습이었다. 곽명우는 “나에게는 기회라면 기회라고도 할 수 있다. 백업으로 있을 때도 팀의 플레이를 이미지 트레이닝하며 꾸준하게 준비해왔다”라고 각오를 다졌다. ‘준비된 세터’ 곽명우가 자신만의 지도를 코트에서 풀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skullboy@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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