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스토리] 정경배 코치, 플로리다 수사반장된 사연
OSEN 김태우 기자
발행 2016.01.28 13: 00

못말리는 SK 자율 훈련, "속으로는 대견"
베테랑들의 솔선수범, 타선 경쟁 본격 점화
정경배 SK 타격코치는 요즘 플로리다의 수사반장이 됐다. 선수들의 타격지도에도 시간이 모자랄 판인데, ‘시간표 탈영병’을 잡는 임무까지 맡았기 때문이다. 선수가 조용히 배트를 들고 라커룸을 떠났다는 제보가 들어오면 즉시 출동한다.

사연은 이렇다. SK는 이번 플로리다 캠프에서 예년보다 강도 높은 훈련을 소화 중이다. “취지가 아무리 좋더라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라고 강조한 김용희 SK 감독은 자신의 철학을 잠시 접어두고 강훈련으로 선수들을 조련 중이다. 선수들 또한 훈련 공식 개시 시간보다 1시간가량 더 일찍 경기장에 나오고, 야간 훈련을 개별적으로 연장하는 바람에 훈련 시간은 더 길어졌다.
그럴수록 중간 중간 잘 쉬는 것도 중요한다. 선수들의 의욕이 너무 앞서도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문제가 된다. 이를 중간에 잘 조절해주는 것이 바로 코칭스태프의 몫이다. 속으로는 대견해 선수들을 안아주고 싶지만, 10월까지 이어지는 시즌을 큰 그림에서 보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실 선수들은 당장의 과제에 그런 그림을 잘 보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코칭스태프의 임무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전지훈련이다.
올해 팀의 4번 타자로 큰 기대를 모으고 있는 정의윤은 최근 정경배 코치에게 잡혀 원대 복귀했다. 오후 정규 훈련이 끝난 뒤 저녁을 먹기 전 공을 더 치고 싶은 마음에 몰래 시설이 마련된 실내체육관으로 향한 찰나였다. 주위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회심의 미소를 짓는 순간, 어느새 그 소식을 듣고 한걸음에 달려온 정 코치로부터 강제 연행(?)됐다. 외야수 이진석은 9시를 훨씬 넘겨서까지 야간 타격 훈련을 하다 같은 조치를 당했다. 선수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지만 정 코치는 또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정 코치는 이에 대해 “정의윤은 오후에도 충분히 많은 타격 훈련을 했다. 그렇다면 휴식 후 야간 훈련 때 다시 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다”라면서 “너무 많이 치다보면 폼이 흐트러질 수도 있다. 체력이 떨어지면 몸에도 무리가 간다. 그러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래서 자제를 시킨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 코치는 “오늘 하루 많이 치는 것보다 앞으로 두 달 동안 꾸준히 훈련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분명 적절한 안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1인2역을 소화하느라 바쁜 정 코치지만 흐뭇한 미소까지 다 숨기지는 못한다. 정 코치는 “올해는 시키지 않아도 유독 선임급 선수들이 앞장을 서 더 하려고 한다. 분위기가 또 달라졌다. 선임 선수들이 배팅, 러닝, 웨이트를 가리지 않고 모든 훈련에 솔선수범하고 있다”라고 전했다. 박정권은 오후 훈련이 끝난 뒤 ‘잡기도 힘들게’ 숙소 근처를 뛴다. 그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은 선수들끼리 다 알기 마련이다. 훈련 분위기는 비장해질 수밖에 없다.
정 코치는 “사실 훈련 자체가 빡빡해서 선수들이 숙소에 있을 시간도 거의 없다. 저녁을 먹고 곧바로 야간 훈련을 시작해 끝나면 오후 9시가 넘는다. 다른 때보다 연습량도 많고 시간도 긴 일정이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알아서들 더 하려고 한다”라며 선수들을 칭찬했다. 그러는 순간에도 박정권 이명기 최승준 등 선수들은 경쟁적으로 자율훈련에 임하고 있었다. 고개는 절레절레 흔들리지만, 지켜보는 눈빛과 가슴이 무겁지는 않다. /skullboy@osen.co.kr

Copyright ⓒ OSEN.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