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센 인터뷰]44년 장인에게 야구공의 미래를 묻다
OSEN 이대호 기자
발행 2016.01.29 13: 00

스카이라인, KBO 리그 2016~2017시즌 통일구 선정
“한국의 롤링스, 미즈노로 만드는 게 목표”
‘탱탱볼’ 논란을 뒤로 하고 KBO리그는 2016 시즌부터 통일구를 쓰기로 결정했다. 이제까지 KBO리그는 구단이 자체적으로 공인구 업체를 선정해 사용했지만 구장마다 다른 야구공을 쓴다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됐다. 여기에 작년 기준 반발력에서 벗어난 공인구까지 나오면서 통일구에 대한 요구가 더욱 높아졌다. 

KBO는 다각도로 검토한 끝에 ‘스카이라인’을 통일구 업체로 선정했다. 이제 스카이라인은 2016년과 2017년 2년 동안 KBO리그에 야구공을 보급한다. 잠실에서도, 사직에서도, 고척에서도 이제 모든 야구공에는 ‘스카이라인’이 찍히게 된다. 
- "사람 손이 꼭 필요한 야구공, 공장 문만 2번 닫았다"
스카이라인 스포츠는 지난 1972년부터 야구공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처음 야구공을 생산할 때 회사 이름은 동아스포츠였지만, 당시 신입사원이었던 라제훈 대표이사가 브랜드 이름을 ‘스카이라인’이라고 정했다. “회사 전무님이 한 날은 저보고 ‘우리도 야구공 브랜드가 있어야 하니 생각해봐라’고 지시를 내렸습니다. 어디 이름 짓는 공부를 해 봤어야 알죠.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사무실 창 너머 미군 주차장에 ‘스카이라인’이라는 이름의 차가 서 있는 겁니다.(1957년부터 생산된 일본 닛산 자동차 모델명) 야구공이 하늘에 스카이라인을 그리면서 날아가잖아. 그래서 이걸로 정했더니 다들 마음에 들어 했죠.”
이후 유일한 국산 야구공 생산업체로 1982년 프로야구 개막을 맞이했고, 스카이라인은 국내에서 야구공을 생산하는 유일한 업체였다. 라 대표는 “그때야 야구공 만드는 게 우리 뿐이었으니까 우리 공이 말하자면 공인구였다. 그런데 야구공 공장을 총 2번 닫았었다. 첫 번째는 1989년이었는데, 노태우 대통령 취임 후 노동운동이 확산됐고, 노동자들의 임금도 2배로 올랐다. 야구공은 가격이 오를 일이 별로 없는 물건이다. 야구공 가격은 그대로인데, 월급은 오르니 국내에서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라 대표는 해외로 눈길을 돌렸다. 1989년 당시에는 중국과 수교를 맺기 전이었는데, 라 대표는 태국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사업은 순탄치 않았다. “한 1~2년 지나서 국내 다른 업체들은 전부 중국으로 갔는데, 우리는 태국에 이미 공장을 지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한 날은 미국 바이어가 와서 ‘왜 내가 태평양에 30만 달러를 내다 버려야 하냐’라고 말하더라. 우리 공이 다른 업체에 비해 개당 1달러가 비싼데, 매년 30만개를 사 갔으니 그 만큼 손해를 본다는 이야기였다. 결국 그 바이어와 계약에 실패하고, 우리도 태국 공장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 라 대표는 KBO 리그에 보급하기 위한 야구공 생산을 재개한다. KBO 리그는 과거 ‘국내 생산 야구공’만을 납품받아 썼는데, 사실 1년에 쓰는 양은 많지 않다. 라 대표는 “한 구단이 1년에 3000타(36000개) 정도 쓰는데, 돈으로 해봐야 얼마 안 된다. 그것만 바라보고 회사를 운영하는 건 힘들다. 그래도 야구공을 국내에서 2001년까지 만들었는데, 인건비가 비싸다보니 운영에 애를 먹었다. 야구공에 실을 108번 꿰매는데, 그 실 길이가 2미터 50이다. 정말 힘든 일이고, 숙련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사람을 쓰기 힘들어 군부대가 많은 양구, 원통 등 군사도시에 돌아다니며 군인 부인들에게 일을 부탁했다. 그러다보니 품질관리가 쉽지 않았고, KBO도 수입 야구공을 허락하면서 국내생산 공장을 접었다.”
이후 스카이라인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공을 수입해 납품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중국 역시 인건비가 올라가며 공의 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는데 있다. 야구공 제조는 숙련도가 매우 중요하고, 사람의 손이 반드시 필요한 일인데 중국에서도 가구당 1자녀만 낳기 시작하며 힘들고 어려운 일은 피하기 시작했다. 라 대표는 “하루는 잠실야구장에서 날 부르더라. 두산전으로 기억하는데, 심판들이 사람들 다 보는데 우리 야구공에 하나씩 펜으로 가위표를 하고 ‘이런 공은 못 쓴다. 이렇게 울퉁불퉁하고 바느질도 제대로 안 되어있는데 쓰겠냐’라고 하더라. 투수들이 하도 공을 바꿔달라고 해 경기 진행이 안 될 정도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자체공장을 세우기로 했다”고 말했다. 
스카이라인은 2012년 다시 자체적으로 공을 생산하기로 결정한다. 이번에는 스리랑카에 공장을 세웠는데, 내년부터 KBO 리그 통일구로 쓰이게 될 야구공도 스리랑카 공장을 통해 나온다. 스리랑카 공장에는 총 326명(2015년 6월 기준)의 임직원이 일하고 있는데, 라 대표도 1년 12개월 중 10개월은 스리랑카 공장에서 일한다. 스리랑카 공장의 내부 작업인원은 모두 정직원이며, 좋은 대우를 해 준 덕분에 작업효율도 높다. 
- "타고투저, 야구공도 원인이었다"
최근 2년 KBO리그는 극심한 타고투저 논란에 시달렸다. 여러 원인들이 지목됐지만, 공인구 반발력 문제가 끊임없이 거론됐다. 한 업체는 2015년 4월 반발력 테스트에서 기준치를 초과했고, 현장 감독들도 ‘공이 너무 잘 튄다’고 입을 모았다. 스카이라인은 작년 꾸준하게 기준치를 준수한 공을 만들었다.
라 대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이유를 ‘모사’에서 찾았다. 야구공은 코르크 심지를 모사로 감고, 다시 소가죽을 덧대고 붉은 실로 꿰매 만든다. 모사는 야구공의 탄력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소재다. 미국 공인구 규정에 따르면, 모사 구성성분은 85%는 천연소재 나머지 15%는 합성섬유를 써도 된다. 반면 일본은 100% 천연모사를 써야 한다. 
이제껏 국내 업체들은 85%짜리 모사를 쓰다가 KBO가 100% 모사를 공인구로 쓰기로 해 부랴부랴 바꿨다. 라 대표는 “100%짜리 모사는 일단 너무 튀고(반발력이 크고), 쉽게 끊어져 야구공을 만들기 쉽지 않다. 우리도 그거(반발력) 잡는다고 작년에 정말 고생 많이 했는데, 이제 스리랑카에서 안정적으로 생산 중이다. 야구라는 게 뛰어난 투수가 많으면 투고타저, 타자가 많으면 타고투저가 된다. 하지만 작년 타고투저는 공이 너무 많이 튄 것에 원인이 있었다고 본다”며 개인적인 생각을 전했다. 
야구공과 함께 한 44년, 라 대표에게 야구공이란 무엇일까. “우리가 처음 야구공 사업을 시작했을 때 (선친이 만든 회사와) 삼성, LG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왜 내가 이걸 시작해서 이 나이까지 쉬지도 못하고 일하는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야구공이 참 고약하다. 대신 야구공 덕분에 살기도 했다. 우리 회사도 IMF때 화의신청을 했는데, 외환위기 속에서도 1년 133경기 야구는 하더라. 덕분에 회사도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야구공이 내 인생이다.”
- "한국의 롤링스가 되는 게 목표"
라 대표는 4년 전 모든 사람들의 반대를 뒤로 하고 스리랑카에 공장을 세웠다. 야구공 업체들이 중국에서 생산된 공을 수입해 들여와 판매하던 것과는 다르게 라 대표는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리고 도전은 통일구 선정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라 대표는 “일을 하면서 우리 공이 통일구가 됐다는 이야기에 가장 행복했다. 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건 태국에서 미국 바이어한테 계약을 할 수 없다는 통보를 들었을 때다. 당시 담배를 끊었었는데, 그 이야기 듣고 바로 줄담배를 피웠다.”
라 대표의 목표는 스카이라인을 세계적인 스포츠업체로 키우는 것이다. 메이저리그 하면 롤링스, 일본 프로야구 하면 미즈노를 떠올리듯 KBO리그는 스카이라인이 떠오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라 대표는 “통일구는 2년 단위 계약인데, (이번에 탈락한) 다른 업체들도 가만 있지 않을 것이다. 철저한 품질관리로 이 자리를 지키고, 더 나아가 대한민국이 낳은 스포츠업체가 되는 게 꿈”이라며 웃었다. 칠순을 앞둔 나이였지만, 쩌렁 울리는 목소리로 목표를 말하는 라 대표의 눈빛은 청년과 다르지 않았다. /cleanupp@osen.co.kr
[사진] 여의도=이동해 기자 eastsea@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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