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경기서 맹활약해야 MLB 입성 가능
수비와 주루플레이 발목 잡아...투고타저 흐름 역행
한국과 일본을 모두 평정한 선수인 것을 감안하면, 다소 놀라운 일이다. 이대호(34)가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 시범경기부터 기량을 증명해야하는 상황에 놓였다.

시애틀 구단은 4일(이하 한국시간) 이대호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다고 공식발표했다. 시애틀 제리 디포토 단장은 “이대호가 우리 팀 1루수 경쟁에 우타 파워히터 잠재력을 가져왔다”며 “이대호는 한국과 일본에서 높은 수준의 생산력을 발휘했다. 우리는 이대호가 어떻게 활약을 재현할지 흥미롭게 지켜볼 것이다”고 전했다.
덧붙여 디포토 단장은 “이대호는 (메이저리그) 스프링트레이닝에 초청선수로 참가할 것이다. 스프링트레이닝에서 경쟁할 기회를 주겠다”고 밝혔다.
이로써 이대호는 3월에 시작하는 시범경기에서 맹활약을 펼쳐야한다. 이미 시애틀은 1루수로 애덤 린드, 지명타자로 넬슨 크루즈를 확정지은 상태. 당장 이대호의 경쟁 상대는 이들이 아니다. 이대호와 마찬가지로 메이저리그 진입을 목표로 하고 있는 헤수스 몬테로와 가비 산체스다. 셋 다 우타자로 시범경기부터 장타력을 발휘해야 개막전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래저래 예상했던 것보다 상황이 안 좋다. 당장 최근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KBO리그 출신 선수들과 비교해도 천지차이다. 박병호와 김현수 모두 메이저리그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단기간 부진해도 꾸준히 기회를 받을 수 있다. 지난해 강정호 역시 피츠버그와 메이저리그 계약을 체결, 시범경기와 시즌 초반 부진했지만, 출장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이대호는 최악의 경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동안 이룬 업적만 보면, 이대호가 강정호와 박병호, 그리고 김현수에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대호는 KBO리그보다 상위리그로 평가받는 일본프로야구에서 맹활약했다. 최근에는 소속팀 소프트뱅크의 2연패를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재팬시리즈 MVP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대호가 이토록 박한 평가를 받은 것은 수비와 주루플레이, 그리고 최근 메이저리그에서 부는 극심한 투고타저 현상 때문이다.
이대호는 박병호와 같은 1루수지만, 박병호만큼 기민한 움직임을 보여주지는 못한다. 수비 범위서도 박병호보다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에는 1루수로 54경기 선발출장에 그쳤다. 일본 진출 후 매년 1루수로 선발 출장하는 횟수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 역시 메이저리그 스카우트들에게 감점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주루플레이 또한 이대호 영입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담장은 넘기는 게 아니라면, 외야 우중간이나 좌중간을 크게 갈라야 2루타가 된다. 2루에서 안타 하나로 홈까지 들어오지 못할 때도 있다. 메이저리그 야수들의 수비가 날로 향상되고 있음을 감안하면, 이대호의 스피드는 결정적인 순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메이저리그에 투고타저 흐름이 지속되면서, 모든 구단이 수비와 주루플레이의 비중을 높게 보고 있다. 아무리 젊고 재능이 뛰어나다고 해도, 통산 OPS 0.784에 불과한 제이슨 헤이워드가 특급 수비를 앞세워 1억 8400만 달러 계약을 체결했다.
투수들의 구속이 날로 향상되고, 저득점 경기가 반복된다. 점수를 뽑는 데 치중하기 보다는 지키는 야구로 승리를 쌓으려 한다. 이대호가 강정호나 김현수처럼 멀티포지션이 가능하고, 주루플레이도 어느 정도 됐다면, 이대호에 대한 평가는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어쨌든 이대호는 도전을 택했고, 계약은 체결됐다. 이제 이대호가 할 일은 시범경기에서 최대 장점인 타격으로 압도적인 활약을 펼치는 것이다. 경쟁자도 충분히 붙어볼만 하다. 특급 유망주 출신이었던 몬테로는 여전히 메이저리그보다 마이너리그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 산체스는 지난해 라쿠텐에서 타율 2할2푼6리 7홈런 OPS 0.720을 기록했다. 일본에서 성적만 놓고보면 이대호의 상대가 안 된다. 시애틀은 3월 3일 샌디에이고전을 시작으로 4월 3일까지 약 30경기를 치른다. / drjose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