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 최고 투수, 시련 겪은 9년 세월
예사롭지 않은 상승세, SK '행복한 고민'
“단체 훈련이 그리웠어요. 참 좋네요”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내렸다. 숨 가쁘게 이어지는 훈련에 지쳤을 법도 했다. 그러나 미소는 밝았다. 지난해 11월 일본 가고시마에서 열린 SK의 특별캠프 당시, 정영일(28, SK)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힘들지만 모든 것이 즐겁다고 했다. ‘특급 유망주’, ‘계약금 110만 달러’라는 거창한 꼬리표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지만 대신 그는 야구에 대한 즐거움을 얻어가고 있었다. 그 기분은 거침없는 상승세로, 상승세는 팀과 팬들의 기대로 이어지고 있다.
정영일은 미 플로리다 베로비치의 히스토릭 다저타운에서 진행 중인 SK의 1차 전지훈련에서 쾌조의 페이스를 이어가고 있다. 몸 상태는 현 시점에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벌써부터 시속 150㎞에 가까운 공을 던지고 있다. “불펜피칭을 보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다르다”. 캠프에 참가하고 있는 한 관계자는 감탄사는 정영일의 현 상황을 그대로 대변한다.
꾸준한 훈련의 성과다. 실제 정영일은 상무에서 제대한 뒤 곧바로 SK의 애리조나 교육리그에 참가했다. 11월에는 가고시마 특별캠프에 나갔고 12월과 1월에도 착실히 몸을 만들어 플로리다에 도착했다. 정영일도 “끊기는 것이 없이 이어지는 훈련 과정이 좋다”고 만족감을 드러냈다. 가고시마 특별캠프 당시 “잘 던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고 부족한 부분은 보완하려 했다. 열심히 하다 보니 비교적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던 정영일은 그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
시련은 그를 잠시 멈추게 했을 뿐이다. 청운의 꿈을 품고 태평양을 건넌 것이 2007년이다. 지난 세월은 좋지 않은 기억이 더 많았다. 그래서 야구를 대하는 자세가 더 절박해졌다. 누구보다 열심히 훈련했다. 분명히 가지고 있는 것은 워낙 많은 선수다. 스스로 평가할 때 빠른 공 계통은 지금도 괜찮다. 현재는 문제점으로 인식한 체인지업 계통을 가다듬는 데 주력하고 있다.
SK는 정영일에 많은 공을 들였다. 신인드래프트 당시 다른 구단이 예상한 순위보다 앞서 정영일을 뽑았다. 급하게 생각하지 않고 군 문제부터 해결하도록 했다. 이제는 들인 공을 결과로 만끽할 차례다. 구단 내부에서도 생각이 엇갈릴 정도인데, 그만큼 정영일의 가진 재능이 좋다는 것을 반증한다. 위력적인 구위를 가지고 있어 불펜으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 선발감으로 더 공을 들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양쪽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가능성이 보이기에 나오는 이야기다.
정작 정영일은 보직에 대해서는 생각을 버렸다. 일단 1군 진입, 그리고 1군에서 안정적인 입지를 만들어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팀의 부름에 응답할 수 있도록 준비는 착실히 하고 있다. 마운드 구상에 머리가 아픈 코칭스태프가 바라는 것 그대로다.
가장 큰 무기는 150㎞의 공보다 오히려 심장에 있을지 모른다. 수많은 공을 던지면서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팀을 이끌었던 고등학교 당시의 그 배짱은 여전하다. 정영일은 “워낙 잘하는 선수들이 많다. 하지만 나보다 잘한다고 해서 기가 죽거나 주눅이 들지는 않을 것이다”라며 “자신감을 가지고 벽에 도전해보겠다”고 말했다. 기개는 여전히 살아있다. 이제 그 기개를 펼 기회를 잡는 일만이 남아있다. 울분의 10년을 날릴 준비는 서서히 마무리되고 있다.
2016년 프리뷰
컨디션은 좋다. 구위도 인정받았다. 리그 적응 등 여전히 난관은 많지만 지난해 전력에 없었던 투수 중 가장 1군에 근접해 있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아직 조심해야 할 단계인 만큼 신중하게 다룬다면 능히 1군 팀 마운드에 도움이 될 만한 자원이다. 관심사는 어디서 쓰느냐다. 가고시마 캠프 당시 정영일은 “상무에 있을 때는 한 경기에 30개 정도를 던지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여기서는 100~120개를 던질 수 있는 준비를 했다. 그렇게 던지고도 다음 날 컨디션은 괜찮은 것 같다”라고 하면서 “감독님, 코칭스태프의 지시에 어느 쪽이든 준비할 수 있게끔 하겠다”고 말했다. 일단 불펜에서 리그에 적응하는 단계를 거칠 것으로 보이지만, 후반기에는 정영일의 보직을 놓고 고민의 시기가 올 수도 있다. 어쨌든 SK에 모처럼 기대할 만한 투수가 나왔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올해 성적이 어쨌든, 정영일에 대한 기대감은 계속 커질 것이 확실하다. /skullboy@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