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 토크] ‘폭풍성장’ 이형종, 가슴속에 107번 새기다
OSEN 윤세호 기자
발행 2016.02.12 05: 50

이형종, 야수 전향 약 1년 만에 1군 캠프 참가
육성선수 때 단 107번 간직...첫 목표 1군 류제국 선발등판 경기 맹활약
아직은 과정이다. 목표점에 닿으려면 더 많은 인내와 고통이 필요하다. 그래도 자신이 계획한 관문을 하나씩 통과하고 있다. LG 트윈스 외야수 이형종(27)이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지 약 1년 만에 1군 스프링캠프를 치르고 있다.

이형종의 1군 기록은 투수로 나선 2010년에 멈춰있다. 2008년 LG에 1차 지명을 받고 유니폼을 입었으나 부상과 수술, 그리고 재활이 반복됐다. 스스로 유니폼을 벗고 팀을 나간 ‘문제아’가 된 적도 있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우여곡절 끝에 LG로 돌아와 절치부심했으나 부상악령은 이형종을 떠나지 않았다. 결국 이형종은 2014년 10월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했다. 
많은 이들이 반신반의했다. 무엇보다 프로입단 5년이 넘은 선수 중에 포지션 전향에 성공한 경우가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이형종은 빠르게 올라섰다. 지난해 퓨처스리그 39경기에 출장해 타율 3할5푼 5도루 13타점 14득점 OPS 0.799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번 1군 스프링캠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미국 애리조나 현지시간으로 10일 이형종을 만나 타자 전향 후 있었던 일들을 들었다. 
먼저 이형종은 1군 스프링캠프 참가가 확정된 순간을 돌아봤다. 아마추어 시절 타격에도 재능이 있었던 만큼, 새로운 도전을 택했고, 결승점에 조금 더 다가갔다. 
“1군 캠프에 간다는 걸 알고 나서는 생각보다 덤덤한 기분이 들었다. 예전 신인 시절이었다면 엄청 좋아했을 것 같은데 이번에는 그냥 ‘가는구나’ 싶더라. 오히려 ‘이제 더 잘 하자’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전보다 야구에 더 집중하게 됐다. 솔직히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치는 것을 좋아했다. 단지 투수가 좀 더 돋보이고 멋있어 보이는 자리라 투수를 택했다. 그런데 어깨가 아파서 투수를 못하게 됐다.”
이형종에게 타자 전향은 곧 벼랑 끝이었다. 야구인생을 건 도전이었다. 훈련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크리스마스에 아무도 없는 이천 챔피언스파크에서 홀로 타격 훈련을 했다. 애리조나서도 이형종은 늦은 시간 숙소 밖으로 나와 배트를 휘두르고 있다. 
“타자가 내 야구인생의 마지막 도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2014년 10월 타자로 안 되면 유니폼을 벗어야 된다는 마음으로 타격훈련을 시작했다. 비장한 마음이 강했다. 사람들에게 투수가 안 돼서 타자로 전향했다고 보이기 싫었다. 무조건 타자로 끝장을 보자고 다짐했다. 그래서 아무도 안 할 때라도 나는 꼭 훈련해야 한다는 마음이 생긴 것 같다.”
절대 그냥 되는 일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투수와 타자는 훈련방식과 훈련양의 차이가 크다. 근력이나 체력에서 요구되는 부분도 다르다. 이형종 또한 처음 야수로 훈련하면서 늘 높은 벽과 마주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정신적인 부분이었다. 세 자릿수 번호를 단 육성선수란 현실이 이형종에게 너무나 차갑게 다가왔다. 
“힘든 게 정말 많았다. 야수는 투수보다 훈련을 많이 한다. 단체 훈련도 많고 개인 훈련도 많다. 야구를 시작한 후 이렇게 훈련을 많이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육체적인 것보다는 정신적인 게 더 힘들었다. 작년 107번 달았을 때도 나도 모르게 마음이 아팠다. 아무 것도 아닌 거고 당연한 것인데도 그랬다. 107번은 내게 현실을 알게 해준 번호였다. 어차피 나는 107번 육성선수란 사실 때문에 작아졌다.”
좌절은 한 순간이었다. 이형종은 107번을 달고 두 자릿수 번호를 얻기 위해 다시 달렸다. 올 시즌 이형종은 초중고 시절부터 달았던 36번을 달았다. 등록선수 명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36번은 어릴적부터 달았던 번호라 더 애착이 간다. 이 번호를 달 수 있게 돼서 정말 기분이 좋다. 사실 신인때부터 달고 싶었는데 당시에는 주인이 있는 번호였다. 작년에 107번하면서 내년에 꼭 36번을 달겠다는 생각을 했다. 107번이 내게 목표의식을 강하게 만들었다.”
많은 야구선수들이 그렇지만, 이형종 또한 이승엽을 생각했다. 초등학생 시절 언젠가는 이승엽 같은 선수가 되겠다는 목표와 함께 36번을 택했다. 
“어린 시절 우상이 이승엽 선배님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도 내 우상이다. 당시 이승엽 선배님이 다리를 높이 들고 치시는 것을 그대로 따라했었다. 지금은 그렇게 다리를 높이 들지는 않지만, 타자로 막 돌아왔을 때는 나도 모르게 옛날 폼이 나왔다. 지금은 타격 폼이 많이 수정됐다. 배트 세우는 것도 달라졌다.” 
이형종은 배트를 잡은 순간부터 하나씩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퓨처스리그 활약과 1군 스프링캠프, 그리고 1군 무대까지 하나씩 올라갈 것을 결심했다. 
“배트를 잡고 2년 안에 1군 무대에 서겠다고 다짐했다. 작년 목표는 어떻게든 내 모습을 보여주고 2군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 1군 캠프에 참가해야 된다고 생각했는데 다행이 이뤄졌다. 사실 이것도 엄청 빠른 것이다. 남들이 보기에는 욕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는 목표대로는 가고 있다. 지나친 욕심이라도 과정에 충실하면 가능하다고 봤다. 그래서 타자 전향 후 많이 치는 것부터 시작했다. 하루에 2000개씩 쳤다. 일단 많이 치고 내 것을 만들어가기로 했다. 당시 서용빈 코치님이 이천에 함께 있으면서 많이 도와주셨다. 자기 전에는 꼭 거울을 보고 스윙했다. 훈련에 대한 열정이 나도 모르게 커졌다. 올라서기 위해선 남들보다 무조건 더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모든 게 순조롭지는 않다. 아직 이형종은 외야 수비를 할 때 송구에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투수시절 수술을 받은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
“송구할 때 정신적으로 영향을 받을 때가 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타격이 있는데 다쳐서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든다. 투수 출신인 만큼 강하고 정확한 송구를 하고 싶은데 막상 던지려 하면 나도 모르게 움츠려 들 때가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잘 될 때는 정말 잘 되는데 어떨 때는 어이없게 원바운드를 던진다. 처음에는 더 심했다. 15미터 던지는 것도 무서워했다. 그러니까 서용빈 코치님께서 언더든 사이드든 중계맨한테 전달만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처음에는 진짜 사이드로 15미터씩 던졌다. 내가 잡으면 중계맨이 열심히 뛰어와 줬다. 점점 거리를 늘려갔고, 이제는 거리에 제한을 두지는 않는다. 하루하루 조금씩 좋아지는 것은 확실하니까 용기를 얻고 있다.”
이형종은 혼자서는 절대 여기까지 오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이천에서 함께한 코치들과 선후배 선수들, 그리고 양상문 감독에게 꼭 고마움을 전달하고 싶다고 했다.
“도와주신 모든 코치님들이 고맙다. 이번 캠프도 마찬가지다. 코치님들이 하나라도 더 가르쳐 주려고 하신다. 그리고 선배님들도 정말 많이 도와주신다. 박용택 선배님과 정성훈 선배님이 타격에서 좋은 말씀을 해주고 계시다. 전에 함께 했던 투수들도 항상 응원해주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경쟁자가 아니라서 그런가 보다. 무엇보다 가장 고마우신 분은 양상문 감독님이다. 내가 신인 때 감독님이 투수코치셨다. 그 때부터 인연이 시작됐는데 감독님으로 부임하시고 나서도 나를 굉장히 챙겨주셨다. 투수로 잘 했어야 했는데 감독님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굉장히 죄송한 마음이다. 야수로 바꾸고 싶다고 할 때도 감독님이 결정을 내려주셨다. 내 생각을 많이 해주시는 거에 대한 보답을 꼭 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이형종은 팀에서 가장 가까운 주장 류제국에게 메시지를 전했다. 투수로 함께 활약하자는 처음의 다짐은 이루지 못하게 됐지만, 언젠가 1군 무대에 올라 야수로서 류제국의 선발승을 돕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국이형이과는 LG에 오기 전부터 조금 알았었다. 그때 같은 재활센터를 다녔다. 이후 2013년 2월에 제국이 형이 LG에 오면서 더 친해졌다. 당시 제국이형이 ‘함께 투수로 활약해보자’고 했었는데 이제는 내가 투수가 아니라 좀 아쉽다. 하지만 다른 목표가 생겼다. 1군 무대 제국이형이 선발 등판한 경기에 나가 내가 타점도 올리고 호수비도 해서 제국이형에게 승리를 주는 것이다. 사실 여기 와서는 제국이형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투수조와 야수조가 훈련이 다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힘들다. 시즌 때 1군에 올라가서 제국이형이랑 오래있고 싶다.”
이형종은 인터뷰를 마치고 모자 안에 107번을 적었다. 야수 전향 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의 기억을 간직, 항상 간절한 마음으로 훈련에 임하려 한다. 이형종은 이날 청백전에서 3타수 2안타로 맹활약했다. 3회말 2사 만루서 싹쓸이 결승타를 터뜨렸다. 모든 훈련이 끝난 밤에는 홀로 숙소에서 나와 배트를 휘둘렀다.
한편 양상문 감독은 이형종의 가능성에 대해 “야수로서 놀라울 정도로 빨리 성장하고 있다. 이번 캠프에 온 것도 실력과 잠재력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장세가 유지된다면, 올 시즌 후반기 1군에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싶다”고 밝혔다. / drjose7@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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