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L에서는 오심 등 억울한 판정으로 승패가 뒤집혀도 이의제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제도적으로 그렇다.
지난 16일 KCC 대 오리온전에서 불거진 ‘사라진 24초 논란’이 거세다. 3쿼터 종료 3분 56초를 남기고 KCC가 공격권을 가졌다. 그러나 KCC가 공격권을 가진 24초 동안 시간은 흐르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이날 3쿼터는 10분 24초, 전체 경기는 40분 24초 진행됐다. 경기는 종료 직전 터진 전태풍의 역전 3점슛에 의해 KCC가 73-71로 이겼다.
정상적으로 경기가 진행됐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정규리그 우승과 4강 직행의 향방이 걸린 아주 중요한 경기였다. KBL은 24초가 더 진행됐다는 사실을 뒤늦게 인지했다. 오리온 입장에서 억울할 수밖에 없다. 승리한 KCC도 찝찝하긴 마찬가지다.

KBL은 17일 재정위원회에서 이 안건을 다뤘다. 그 결과 경기감독관과 계시원에게 1년 자격정지를 내렸다. 이정협 주심(300만 원), 김도명 1부심(200만 원), 이승무 2부심(100만 원)에게 각각 차등적으로 벌금이 매겨졌다. KBL은 향후 기록원 교육 강화 등으로 재발방지에 힘쓰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재경기는 불가하다. 오리온이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KBL 경기규칙 C조 이의제기 및 재정신청 조항을 보면 ‘경기 중 심판의 결정 또는 어떠한 사건의 발생으로 인해 한 팀이 불리하게 영향을 받았다면, 경기종료 직후 팀의 주장이 주심에게 경기결과에 대해 이의를 제기함을 알려야 한다. 스코어시트 상의 ’이의제기 시 주장의 서명‘란에 사인한다. 이의제기가 유효하려면 경기종료 20분 이내에 해당 팀의 대표자가 이의제기 사실을 경기·기술위원회에 서면으로 제출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오리온은 18일 공식입장을 내고 KBL에 재경기를 요청했다. 주최측의 잘못이 명백한데 오리온이 피해를 보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현실적으로 경기 중 이상을 발견하더라도 경기 종료 후 20분 안에 주장이 서류에 사인해서 제출하기란 매우 어렵다. 경기 후 경기장 분위기는 매우 어수선하다. 선수들은 경기 후 라커룸에 모여 지도자와 미팅을 갖는다. 이것만 해도 20분이 훌쩍 지나간다. 각종 사인회와 언론사 공식인터뷰 등 경기 후에도 할 일이 태산이다. 20분은 순식간에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
이상한 점을 발견하려면 비디오 판독이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확실한 물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20분의 시간 안에 해당 영상을 확보해 판독하고, 서류까지 작성해 이의를 제기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20분이 아니라 2시간을 줘도 시간이 모자라다. 선수단이 경기를 끝내고 곧바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잦기 때문이다. 특히 원정경기의 경우 코칭스태프와 선수단이 제대로 신경을 쓰기 어렵다.
KBL 규정이 이와 같은 이유는 무엇일까. 국제농구연맹(FIBA) 규정에 근거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경기 후 20분 안에 팀의 주장이 이의제기서를 서면으로 제출해야 인정되는 것은 FIBA도 동일하다. 서면질의서도 경기 후 한시간 안에 작성해서 기술위원회에 제출하도록 돼 있다.

FIBA 규정이 이렇게 돼 있는 이유는 KBL과 배경이 다르다. FIBA개최 국제대회서는 하루 한 경기장에서 많게는 6경기가 열린다. 전 경기에서 문제가 발생해 시간이 지체되면 다음 경기가 제 시간에 열릴 수 없다. 그래서 다소 촉박하게 진행시간을 부여한 것이다.
하지만 6개월 장기레이스를 펼치는 프로농구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한 경기장에서 딱 한 경기만 하기 때문에 이토록 20분 안에 서두를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빨리 빨리’가 아니라 '제대로'다. 엉뚱한 외부요인에 의해 경기결과가 틀어지면 돈을 주고 응원하는 농구팬들은 엄청난 상실감을 느낄 수 있다. 기업이 소비자에게 제대로 된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다면 외면받게 돼 있다. 상업적 흥행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농구에 국가대항전 FIBA대회의 규칙을 모두 적용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KBL은 국가대표팀의 국제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FIBA룰을 전격 도입했다. 하지만 파울콜은 예전으로 회귀했다. 여전히 ‘스치기만 해도 파울’이라 국제기준과 거리가 멀다. 올 시즌 중반에는 갑자기 트래블링을 국제기준에 맞춰 엄격하게 불어 각 구단을 당혹시켰다. 그 동안 FIBA룰임에도 트래블링을 제대로 안 봤다는 말이다.
더욱이 KBL이 경기 외적인 FIBA 규정까지 따르는 것은 쓸데없는 문제를 만들고 있다. FIBA 규정상 벤치에 12명의 선수만 앉을 수 있어 나머지 후보선수들이 관객석에 앉아야 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KBL은 ‘사라진 24초’에 대해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방안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20분 안에 이의를 제기하라는 등 비현실적인 규정을 손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