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칼라워커’의 대명사 이현호(36, 전자랜드)가 정든 코트를 떠난다.
이현호는 21일 인천 전자랜드 대 울산 모비스의 2015-201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종전을 앞두고 은퇴기자회견을 가졌다. 2003년 2라운드 8순위로 삼성에 데뷔한 이현호는 2라운드 최초로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후 14시즌 동안 궂은일의 대명사로 성실하게 코트를 누볐다. 특히 193cm의 작은 신장에도 불구 ‘외국선수 전문수비수’로 맹활약했다.
유도훈 감독은 이현호를 예우하는 차원에서 그를 선발로 내보낼 계획이다. 구단은 하프타임에 은퇴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다음은 이현호 은퇴 기자회견의 일문일답.
- 은퇴를 결심한 소감은?
▲ 보잘 것 없는 내게 이 자리가 있는 것만 해도 영광이다. 끝까지 날 응원해주신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23년 농구했고, 14시즌 프로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보다 내게 기회를 주신 여러 감독들 덕이다. 코트 안에서 부러지고 다치고 많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충분히 즐겼다. 행복했다. 영광의 상처를 뒤로 하고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한 것도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제 후배들이 날 대신해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선수생활...(울컥)은 여기까지지만 농구발전을 위해 노력하겠다.
- 올 시즌 앞두고 FA 2년 계약을 맺었다. 아직 1년이 남았는데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 일단 부상이 있다. 내가 다음 시즌 뛰려면 수술을 하고 뛰어야 하는데 재활이 6개월 걸린다. ‘6개월 투자해서 과연 다음 시즌을 잘할 수 있을까?’ 자신에게 솔직히 졌다고 해야겠다. 포기 아닌 포기를 했다. 선수는 코트에서 뛸 때 가장 행복하다.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지만 나 역시도 경기에 많이 못 뛴다면 잘하는 모습을 100% 보이지 못할 것이다.
외국선수도 바뀌었고, 내가 몸이 좋다면 이 규정을 역이용할 수 있다. 몸이 안 좋아서 국내선수가 작은 외국선수에게 쉽게 당한다는 모습을 보일까봐 은퇴를 결심했다. 몸이 안 다쳤다면 작은 외국선수는 다 내 밥이었을 것이다.
- 은퇴를 앞두고 제일 아쉬운 것은?
▲ 올 시즌 팀 성적이 이렇게 된 것이 아쉽다. 13년이라는 시간이 굉장히 길고, FA 5년 계약 하면서 내가 채울 수 있을까 길게 느껴졌다. 지금은 13년 시간이 굉장히 짧게 느껴진다. 입단한 게 어제 같은데 잘한 것도 없는데 은퇴한다는 것이 이제 실감난다. 이 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 전해주고 싶다.
- 선수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 경기에서 이긴 것, 진 것은 세세히 다 말씀드리기 어렵다. 전자랜드에서 비시즌 운동한 게 가장 기억에 남는다. 제일 재밌었다. 그 때는 너무 하기 싫었다. 어디 다치지도 않는가 싶었다. 집에 가면 투덜거렸다. 이를 갈면서 감독님께 약한 모습 보이지 않으려 했다.
앞니가 부러졌는데 이가 없더라. 어디 갔나 싶었는데 목젖에 붙어 있었다. 다시 잡아서 빼고 경기를 뛴다고 했다. 그 때는 무모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굉장히 재밌는 추억이었다.

- 2라운드 출신 신인왕 경력이 선수생활을 오래 하는데 도움이 됐나?
▲ 솔직히 2라운드 출신은 기회가 안 가는것은 당연하다. 2라운드도 아니고 거의 끝부분에서 뽑혔다. 지금 말하면 거의 연습생 수준이다. 저는 행운아다. 복이 넘쳐나는 것 같다. 김동광 감독님이 좋아하는 농구스타일을 내가 했었다. 힘 있게 뛰고 용병 무모하지만 용병 달고 뛰고 그런 것이 좋았다. 서장훈 형 백업으로 서장훈 형이 항상 데리고 다니며 가르쳐주고 이야기를 해줬다. 고맙다. 형들이 농구하면서 선배들이 다 좋아해주셨다. 얼굴이 우락부락해서 무서워서 그런지 몰라도 (주)희정이 형 (강)혁이 형이 나 한 골 넣게 해주려고 하셨다. 동기들도 못하게 되면서 신인상도 수상했다.
솔직히 유도훈 감독님 오셨을 때 제일 속으로 반대했던 사람이다. 김동광 감독님 사퇴하면서 김상식 감독대행이 5반칙되기 전까지 빼지 않으셨다. 이 감독님이 정말로 날 좋아하시는구나 생각했다. 유도훈 감독님 오신다고 해서 정말 속으로 반대했었다. 감독님이 열심히 절 좋게 봐주셨다. 이렇게 전생에 무슨 인연인 것 같다.
- 유도훈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 그 전까지 단순무식하게 했다. 유도훈 감독님 만나고 생각하면서 농구했다. 그래서 장수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정말 감독님이 아니고 유도훈 형 그 정도의 관계다. 정말 미워했었으니 그런 관계가 된 것 같다. 채찍과 당근을 정말 적절히 쓰시는 감독님이고 좋은 형이다.
-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것은?
▲ 후배들에게 멘탈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떳떳하게 말 못한다. 2-3년차는 나도 망나니처럼 생활했다. (서)장훈 (이)규섭이 형이 있으니 당연히 못 뛴다 생각하고 운동 등한시 했다. 다시 도전해보겠다고 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런 부분이 멘탈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린 선수들이 저처럼 후회하는 2년이라는 시간을 보내지 않길. 그 때는 재밌을지 몰라도 지금이 되면 그 순간이 더 연봉을 올리고 농구기술을 연마할 시간을 못 받아들여서 아쉽다. 감독님이 그걸 아셔서 멘탈을 강요하셨을 것이다. 지금 중고선수들도 선수생활이 소중하다는 걸 알기 바란다. 프로 오면 다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면 바닥을 찍고 올라올 것이다.
- 앞으로 계획은?
▲ 감독님이 코치제의를 하셨다. 내가 거절했다. 저에게 주변에서 미친놈이라고 한다. 배가 불렀다고 하신다. 아직 내 계획은 무슨 일 하겠다기보다 13년 동안 딸과의 시간도 없었다. 부모님에게 아들, 남편으로 잘하지 못했다. 1년 동안 그걸 열심히 하고 싶다. 코치를 하면서 할 수 있다고 판단하기 어렵다. 주부 역할을 해보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코치 할 수도 있다. 주부하면서 다른 일거리 있으면 할 수도 있다. 분리수거 한 번도 안 해봤다. 집에 가면 손 하나 까딱 안했다. 집에서 왕으로 지냈다.
- 근성과 성실 대명사였다. 후배들에게 당부할 것은?
▲ 내가 어떻게 팬들에게 기억에 남고 싶은 것은 농구 잘하지도 않았고 열심히 했던 것 같지도 않다. 꾸준하게 했다. 열정적으로 했다. 열정을 가질 수 있다면 꾸준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선수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후배들에게 1라운드에 온 선수는 1라운드대로 자부심 있을 것이다. 연습생이든 2라운드든 자기가 도전하고 싶은 목표가 있을 것이다. 목표에 마음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해본다면 성공하든 안하든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요즘 선수들 보면 그런 부분이 아쉽다. 숙소에서 이야기도 해준다. 선수라면 할 거면 하고 안 할 거면 구단에 이야기해서 다른 일 찾겠다고 해야 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않을 때 보면 가장 아쉽다.

- 팬들이 ‘꿀밤사건’을 기억한다. 후배들도 불의를 보면 나서길 바라나?
▲ 그런 거 보이면 꼭 해서 10년 치 인터뷰를 한 방에 하길 바란다. 아침부터 저녁 10시까지 전화, 인터뷰, 촬영 등을 3일 동안 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기회다. 꼭 잡길 바란다.(웃음) / jasosneo34@osen.co.kr
[사진] 인천=곽영래 기자 young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