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BA도 달성 못했던 대기록에 도전했던 이현호(36, 전자랜드). 끝내 그의 꿈은 이뤄지지 못했다.
인천 전자랜드는 21일 인천삼산체육관에서 개최된 2015-2016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최종전에서 울산 모비스에게 70-89로 패했다. 전자랜드(17승 37패)는 최하위로 시즌을 마치게 됐다.
이현호는 선수로서 마지막 날까지 당당했다. 무릎부상으로 시즌 내내 자리를 비운 그였지만 마지막 모습은 한결같았다. 유도훈 감독은 유니폼을 입고 등장한 그를 선발로 출전시키며 배려했다. 이현호는 2분 8초 동안 파울 두 개와 리바운드 하나를 기록하고 물러났다. 마지막이라고 대충 뛰는 법도 없었다. 함지훈을 끝까지 밀착마크했다.

경기종료 1분 31초전 이현호는 68-85로 뒤진 순간 다시 코트를 밟았다. 선수로서 마지막 순간을 즐기라는 유도훈 감독의 배려였다. 이현호가 종료 31초전 쏜 슛은 빗나갔다. 모비스는 이현호의 마지막 슈팅을 막지 않았다. 종료와 동시에 이현호가 쏜 레이업슛은 골인됐다. 이현호는 2점, 1리바운드, 3파울로 마지막 경기를 마쳤다.
2003년 2라운드 8순위로 데뷔한 이현호는 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선수였다. 신인시절에도 스타 서장훈의 뒤를 봐주는 ‘보디가드’ 역할을 맡았다. 늘 어렵고 힘든 일이 그의 몫이었다. 이현호는 1순위 김동우, 2순위 옥범준, 3순위 박종천, 10순위 오용준 등을 모두 제치고 신인상을 수상했다.
이현호는 늘 꾸준하고 성실하고 한결같았다. 동기들이 하나 둘 코트를 떠날 때도 끝까지 코트를 지켰다. 14시즌을 거치는 동안 우승 1회, 4강 5회, 6강 4회를 거쳤다. 자신이 주역으로 뛴 경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늘 서장훈, 문태종, 주희정, 정영삼 등 팀내 스타선수들을 돋보이게 하는 역할이었다. 그 결과 이현호는 우수수비상 3회, 식스맨상(2011) 1회 수상으로 음지에서 인정을 받았다.
유재학 감독은 “모범이 되는 선수다. 선수들이 다들 화려함만 추구하지만 이현호는 리바운드와 궂은일만 해서 프로에서 14년을 버텼다. 감독들이 가장 좋아하는 선수”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런 이현호가 아쉽게 놓친 대기록이 있다. 바로 기량발전상이다. 2011-12시즌 이현호는 공격력이 일취월장했다. 늘 수비만 하던 이현호였다. 상대팀에서 외곽슛을 쏘도록 놔주는 굴욕도 맛봤다. 피나는 노력을 거듭한 이현호는 노마크에서 날카로운 슛을 쏘는 선수로 변신했다. 시즌 평균 6.04점, 3점슛 성공률이 39.6%에 달했다. 52경기 중 10점을 넘긴 경기가 14경기가 될 정도였다.
이현호는 유력한 기량발전상 후보였다. 만약 이현호가 상을 탔다면 신인상, 식스맨상, 기량발전상을 모두 수상한 역대 최초의 선수가 될 수 있었다. 역사가 60년이 넘는 NBA에서도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은 희귀한 대기록이다. 하지만 이현호는 끝내 상을 타지 못했다. KBL이 2011-2012시즌부터 공교롭게 해당 상을 폐지해버렸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자 KBL은 지난 시즌 이 상을 부활시켰고, 이재도에게 상을 줬다. NBA에서도 나오지 못한 대기록이 눈앞에서 날아간 순간이었다.

이현호는 “보잘 것 없는 내게 이 자리가 있는 것만 해도 영광이다. 끝까지 날 응원해주신 팬들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감사드린다. 23년 농구했고, 14시즌 프로생활 할 수 있었던 것은 내 능력보다 내게 기회를 주신 여러 감독들 덕이다. 코트 안에서 부러지고 다치고 많은 부상을 입었지만, 그만큼 충분히 즐겼다. 행복했다. 영광의 상처를 뒤로 하고 미련 없이 은퇴를 선언한 것도 내 능력 안에서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라며 수상불발에 큰 미련을 갖지 않았다.
193cm의 작은 신장으로 외국선수에 밀리지 않는 수비를 보여줬던 이현호. 늘 주역이 되지 못하고 조연을 자청했던 그였다. 제2의 주희정과 서장훈도 나오기 어렵지만, 제2의 이현호도 보기 어려울 것이다. / jasonseo34@osen.co.kr